2010년 9월 2일 목요일

경계도시2

(2010년 3월 30일 이전에 사용하던 블로그에 있던 것을 옮겨 왔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곳에 저장합니다.)


<경계도시2>를 보았습니다. 
맡고 있는 수업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함께 보기로 한 것인데, 사실은 제가 좀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무엇이길래.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길래. 

사실 '송두율 사건'이라 불리던 그 일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영화가 다루는 바로 그 일이 있던 그때 중국에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에서 조사를 하던 때라 한국에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 끄고' 있었더랬죠.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건이 일어났다 빠르게 잊혀가는 데 저 역시 한몫한 꼴이 되었습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영화는 저 같은 사람에게 큰 소리로 묻고 있습니다. 나의 삶이 아니라고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느냐고.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이 과연 있는 것이냐고. 


송두율 교수는 진정한 '경계인'으로 살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꿈과 희망과 결단이 지금은 좌절되어 절망의 끝으로 빠져 버린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송두율 교수의 경계성이 아니라, 사상과 생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의지를 용납하지 않으며, 이미 정해져 있는 어느 한 극단에 반드시 속해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고집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는 답답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에 돌아온 송교수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던 감독의 애초 의도가 관철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송교수는, 자신의 뜻을 몰라준다고 누군가에게 투정을 하거나 탓하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히려 투정부리고 남탓하는 것은 진보진영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대의명분과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그저 남의 일이라고 영악하게 머리만 굴려 말하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평생을 그의 옆에서 한결같은 믿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모님의 지지 역시 큰 몫을 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었고 끝없이 부유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선택은 어쩌면 그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답답한 우리의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서울의 어두운 밤 모습을 공중에서 천천히 선회하는 시선으로 보여준 영화의 첫 시퀀스는 송 교수의 부유하는 영혼과 닮아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선회할 뿐 내려앉지 못하는 경계인. 그리고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 서울이라는, 삶을 통채로 건 누군가의 선택조차 얄팍한 이념과 대의명분으로 마음대로 재단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한 천박한 욕망이 어두움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도시.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역시 그만큼 힘겨울 수밖에 없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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