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default 상태로의 회귀


상하이에서 핸드폰을 도난 당했다. 도난이다. 개통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아직 첫 사용료도 청구되지 않은 새 전화기이다. 사람이 많아 움짝달싹 못하는 지하철에서 벌어진 일인 것 같다. 외투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가 놓았었는데 지하철에서 내려 무엇인가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지퍼가 열려 있고 그 안에 있던 핸드폰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지하철로 세 정거장을 움직이는 잠시 동안 일어난 일이다. 


by dullhunk, flickr.com 
최근 중국에서 핸드폰 분실은 흔한 일이 되었다특히 지금은 춘절을 앞둔 시기이기 때문에 소매치기가 더 많다고 한다훔쳐서 고향으로 가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런 사건의 '용의자'들은 모두 신장(新疆)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신장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하미과 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름에 주로 먹는 하미과가 주로 나오는 지역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왜 상하이의 소매치기는 모두 신장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일부 상하이 사람들은  신장 외에도 가난한 지역이 많지만 소매치기는 그들로 대표된다는 점에 대해서 인정했다. 한 친구는반은 농담이었지만다른 가난한 지역 사람들은 단결하지 못하는데 신장 사람들은 단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또한 그들은 다른 가난한 지역 사람들과 달리 외모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소매치기가 모두 신장 사람일리는 없다상하이 출신도 있을 것이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신장이나 칭하이, 구이저우 등 가난한 지역 출신들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신장 사람들은 외모로 인해 한눈에 구별되는 '외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외모에 의한 타자화를 통해 소매치기로 낙인 찍힌다외모에 의한 타자성이 행동과 사회적 존재감의 타자성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바로 상하이의 신장 사람들이다.

어쨌거나 상하이를 다닌지 10년만에 처음이고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소매치기'이다. 이 일 때문에 분실증명을 발급받기 위해 경찰서에도 다녀왔다.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쓴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다

10년 동안 상하이에 들인 정성과 관심이 부족했나보다. 내가 매번 상하이만을 이용해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채워왔던 것이 못마땅했던 것일 수도 있다. 뭔가 가져가면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으니 핸드폰이라도 가져감으로써 보상을 요구한 것일 수도 있다. 상하이의 한 친구는 내게 중국에서의 경험이 아직 충분치 않았던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신고를 담당한 경찰관은 나에게 분실 순간 음악을 듣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음악을 듣고 있었다면 음악이 갑자기 멈추니 금세 알지 않았겠냐고 반문하니 이어폰 줄을 끊고 가져가는 경우도 흔한데 그렇더라도 이렇게 사람 많은 지역에서는 어어~” 하는 사이에 그 도둑은 사라지니 잡을 수 없다고,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 생각하라고 했다. 눈 멀쩡히 뜨고 있다가 핸드폰을 분실 혹은 소매치기 당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인류학자가 현지에서 다양한 범죄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위협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죽음을 맞게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상하이와 같은 복잡하고 현대화된 도시에서 인류학자로서의 정체성으로보다는 외국인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이고 이번 일이 인류학자의 고생으로 언급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지역에 대해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계속 아이폰을 쓰다가 안드로이드 폰으로 바꾼 것에 주변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했지만 두 주 정도 사용하면서 즐거웠던 것은 그것을 나의 방식으로 '개성화 설정'(customizing)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customizing한 나의 핸드폰은 그것을 훔치는 동안 그 행위자가 아주 잠깐 동안 느꼈을 불안함과 뒤 이은 안도감 속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몇십 만 원의 수익으로 바뀐 후 (한글로 되어 있는 소프트웨어이니) 중국어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후(이를 중국에서는 shuaji(刷机)라고 한다. 소프트웨어를 밀어버리고 새로 깐다는 뜻이다) 원래의 상태’(default)로 돌아가 낯선 땅 어디에선가 정규 상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새 주인을 만날 것이다. customized되어 있던 특별함, 독특함은 사라지고 평범하고 일반적인, 초기화 상태로 변해버리는 과정. 그것이 도난당한 폰이 맞이할 운명이다

그렇게 보니 이별은 모두 그 모양인 듯 하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누군가였던 사람이 이별의 과정을 통해 평범한, 무리 중의 하나로 변화하는 것. 특별하고 독특한 무엇을 잃어버린 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무리 중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어서 이별은 슬픈 것이다

핸드폰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댓글 2개:

  1. 어찌보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 핸드폰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니까요: 가장 은밀한 시간일 화장실에서 이제 우리를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것은 핸드폰이니-그러니 어쩌면 사람과의 이별보다 더, 애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장사람에 대한 상하이 시민들(더 나아가 대도시 중산층 한족 중국인)의 편견은, 분명 '인종적'인 것 같아요. 물론 신장 출신의 대도시 이주를 계급적, 지역적, 민족적 문제로 볼 여지는 충분하지만,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형성되고 확장되는 지점은 확실히 그들의 피부색과 눈동자 색깔인지도. 그렇기에 '현대 중국에서의 racism'은 좀 더 과감히 다루어져야 할 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다보니 흑인 동네에 자리한 미국의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사회 문제가 '인종'으로 귀결되어 다시 분화되는 양상을 처음으로 몸으로 느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더 충격적인 것은 같은(?) 유색인종인 한국인들이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더 선명하게, 극단적인 형식으로 재생산한다는 점이에요. 가끔 이들 한국인들과 흑인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인종성을 얼만큼 체감하며 사는지에 대해 질문하고는 합니다.

    아무튼 얘기가 너무 산으로 갔네요. 아무쪼록 디폴트화되어 다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을 핸드폰에게 명복(?)을, 그리고 새로 선생님 손에 들어올 핸드폰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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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 한족의 '인종적' 발상 혹은 태도는 정말 심각하게 고려해볼만한 이야기인 것 같아. 내 핸드폰과 관련하여 중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에도 그들은 나보고 이 주제를 연구해보라고 하더라고. 일단은 "위험해서 당분간 할 생각은 없다"고 답하기는 했지만 '과감하게 다루어볼 주제'인 것 같기는 해. 고민을 해봐야지.
      어쨌거나. 그곳에서 '시선'에 대한 안전하고 현명한 대안을 찾아가면서 잘 지내. 건강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 특히 조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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