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만년필과 잉크

얼마전부터 만년필에 꽂혀 버렸다.

계기는 장인어른이 주신 만년필. 몇 해 전 잉크와 함께 주신 것인데 오래 묵혀 놓았다가 올해 초에 꺼내 쓰기 시작했다. 손에 힘을 주지 않아도 펜 자체의 무게만으로도 슬슬 부드럽게 잘 써지는 만년필에 감동하게 되었다.

컴퓨터와 핸드폰 덕에 손으로 글을 쓸 일은 거의 없는데 굳이 만년필을 쓰기 위해 손으로 쓰는 일을 만들기도 했다. 일부러 수첩과 노트를 찾았고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즈음, 가지고 다니던 노트북컴퓨터가 이제 쉬고 싶다며 태업을 하기 시작한 것도 손으로 쓰는 일을 늘리는 데 자연스럽게 일조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몇 가지 이유로 조금은 캐주얼한 분위기의 만년필이 필요했던 터라 다른 만년필을 하나 더 장만했다. 역시 만족스럽다. 만년필 짱!! (음.... 김정운 선생의 책을 읽어봐야겠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만년필 두 자루
오늘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만년필의 이야기는 아니다. 며칠 전 한 학생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말했던, 만년필과 잉크의 비유. 그것을 기록해 놓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는 것과 비슷하다. 비어있던 컨버터에 잉크를 채우는 과정.
잉크가 차올라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 컨버터의 위쪽을 돌리면 잉크가 점점 채워진다. 그렇게 채워진 잉크는 오랜 시간 사용하면서 글과 기록이 된다. (잉크의 소비는 곧 기록/글의 생산이다.) 

적절한 시점이 되어 잉크를 채우고 그것을 이용하여 글을 쓰는 만년필은,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한 아주 단순한 비유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시점에 열심히 채우고 그것을 풀어내어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무언가를 배우고 나의 말로 옮겨보는 과정이다.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비유라는 사실, 인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특히 경쟁체제와 입시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몰아가는 한국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는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색의 잉크를 채우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 잉크를 채웠다는 사실과 그렇게 채우는 행위에 만족할 뿐. 글을 다 쓴 후에는 잉크를 이용해 써 낸 글을 보려 하지 않고 원래 손에 들고 있었던, 이제는 잉크 컨버터가 비어버린 만년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난 잉크를 꽉 채웠었어"라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시선은 종이에 남겨진 글이 아니라 만년필에만 여전히 묶여 있다.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쓰는/써야하는 유일한 글은 '대학입학'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것을 쓰려는 순간 만년필은 사라진다/빼앗긴다.

잉크를 채우는 목적은 글을 쓰기 위함이지 잉크 채우기 그 자체가 아니다. 만년필을 사용하든 볼펜을 사용하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용해 쓴 결과물이다. 필체도 다를 수 있고 쓴 내용도 다를 수 있는, 천차만별의 글. 잉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알아보기 힘든 필기체의 문장이 될 수도 있다. 애초에 잉크를 각기 다른 색으로 채웠다면 종이에 남겨진 기록의 색도 아예 다를 것이다. 만년필을 가지고 있고 잉크를 채웠다는 사실에만 뿌듯해 하며 만년필만 바라보지 말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시간이 흘러 배운 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보고 다시 생각해보고 어떤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나눠주는 행위가 아닐까.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하며 잉크를 채우는 기대에 찬 기쁨은 펜촉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잉크들의 흔적을 위한 것이지 잉크를 채웠다 비우는 행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잉크를 조금씩 채워보고 그것으로 내가 무엇을 쓰는지, 무엇을 그리는지 생각해보는 것.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나눠서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는 일. 그것이 만년필의 궁극의 지향이다.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자판을 두드려 입력하는 것이고, 과도하게 계몽적이고 지나치게 '선생이라는 직업이 가져온 직업병에 가까운 글'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 글을 남기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과 나눠서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 그것이 만년필 예찬으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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