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일 수요일

<광해, 왕이 된 남자>

닮은 얼굴의 두 남자가 있다.

한 명은, 자신의 자리와 외부의 위협 때문에 불안한 임금, 광해.
그리고 또 한 명은 탈을 쓰고 임금을 우스개거리로 삼아 먹고 살던 광대 하선.

하선은 탈을 써야만 임금의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궁에 들어간 이후 그는 비로소 탈을 벗고 맨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지금까지 그가 본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도 탈을 벗게 된 궁에서부터이다.

탈이란 물건은, 써보면 알겠지만 뚫려 있는 구멍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 보이는 물건이다. 궁에 들어오기 전까지 하선의 생활은 그저 보이는 대로 살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만 보던 세상이었다. 탈, 혹은 가면이라는 물건은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지만 어쩌면 세상은 그냥 돌아가는 대로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이 쓴 가면 때문에 좁게, 다르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선은 궁이라는 배경 속에서 사회적인 역할극의 한 역할을 맡는 것으로 자신의 새로운 생활을 본의아니게 시작하게 되었다. 궁에 들어가 자신의 맨얼굴로 임금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그의 모습은 "임금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이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임금의 명이 법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그것 또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위험에 빠진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인지 그도 잘 안다.

맨얼굴로 마주한 세상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서로 죽고 죽이며 살지 않는 것. 그가 현명하게 결정한 것처럼 자신의 꿈은 자신이 꾸는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맨얼굴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두려운 확신. 그는 이제 더 이상 탈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선은 자신의 맨얼굴로 떠나고 도승지 허균은 멀어져가는 배가 보이는 포구에서 그에게 진심어린 예를 갖춘다. 인간의 얼굴을 마주할 때 보일 수 있는, 도승지가 '천한 것'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를 갖추고 그를 보내는 것이다.

탈을 쓰고 마주하던 세상과, 맨얼굴로 보는 세상이 본디 다른 세상은 아니겠지만 경험적으로는 다른 세상이다. 그 탈을 벗을 것인지 그 탈 뒤에서 세상이 무엇인가는 보지 않고 살아갈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하선에게는 목숨까지 걸어야 할 정도의 선택이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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