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7일 금요일

인류학의 연구과정과 다큐멘터리

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류학의 연구과정과 다큐멘터리 작업 과정의 일부가 상당히 닮았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아침 신문의 한 꼭지를 보면서 '그렇지, 이런 점에서 이 두 가지의 작업은 유사한 점이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현장에서의 연구를 끝낸 후 그것을 에스노그라피라는 이름으로 기록하는 과정은 더욱 그렇다.

한겨레(2012년 9월 7일) 김형준의 다큐 세상 "수감생활 다름없는 편집실의 '세 가지 격언'" (기사보기)

이 칼럼에서는 다큐멘터리 편집실에서 통용되는 '세 가지 격언'을 제시하고 있다.

1) 개떡같이 찍어도 찰떡같이 붙이면 된다.

2) 모든 답은 원본 속에 있다.

3) 편집은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두는 것이다.

인류학의 연구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흐름 속에 불편을 끼치면서 들어가 그 흐름에 몸을 실었다가 빠져나와 그 경험을 연구자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언어와 문화적 태도에 적합한 방식으로 해석하여 제시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경험적으로 파악한 정보와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자신이 연구한 사회를, 완벽하지는 않은 모습이라 할지라도 삶의 일부분을 '공감'의 태도로 접근하고, 솔직함의 심정으로 기록/기술/분석하는 에스노그라피로 완성하는 것, 이것이 인류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주기'가 될 것이다.

2003년 상하이, 영화촬영 모습

현장에서의 현장연구 과정은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뭐 특별한 것이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현장연구의 과정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 급작스럽게 결정해야 할 사항들과의 싸움, 연구에 몰입하려는 마음가짐을 방해하는 복잡하고 귀찮고 까다로운 행정적 절차들로 점철된다. 현장연구 이전에 썼던 계획서의 "연구과정 및 월별 계획" 따위는 이미 쓸모없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저 그들의 삶이, 그들과 연구자 자신의 관계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 뿐.
이런 숨가쁜 현장연구를 끝내고 돌아오면 잔뜩 쌓인 자료들, 기록들, 그 당시에는 분명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라 찍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진들 더미 속에 멍한 눈과, 막막함과 조급함으로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패닉 상태의 무표정함으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휴우~)

휴식 혹은 '시차 적응과 마음의 정리' 같은 핑계로 무마된 자신의 사회에서의 재적응기간을 얼마간 지낸 후(사실 그것은 꽤 긴 시간이 되기 일쑤지만)  이제 이런 자료의 무더기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솔직한 태도로 만들어 낼 때가 되었다. 다큐 작가가 편집실에 틀어박혀 원본 필름들을 편집하는 것처럼 인류학자는 자신의 현장연구 과정의 개떡같은 기록을 어떻게든 찰떡으로 만들어 에스노그라피를 완성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고, 그 결과물은 떡집에서 예쁘게 포장되어 나온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균형도 잡히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떡고물도 균일하게 묻은 상태는 아닐테지만, 그래도 나만의 찰떡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찌 되었든 가장 중요한 것들은 현장연구의 자료들이다. (선행연구 검토와 같은 기본적인 것은 여기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인류학적 현장연구랍시고 상하이에 간 것이 정확하게 10년 전인데 1년 반 정도의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몇 선배들이 나에게 열심히 했던 말은 "참여관찰일지를 반복해서 보라"는 것이었다. 그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들어있다고. 다큐 작가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찍어온 원본 필름들을 통해 시작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것처럼 인류학자는 자신의 참여관찰일지와 자료의 무더기를 통해 '그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학자들의 숙명이다!!

그 숙명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제 끝내는 일이 남는다. 현장연구의 과정도 그렇고 에스노그라피의 작성 과정도 그렇고 어떠한 경우라도 만족스럽게 끝낼 수는 없다. 그 과정은 그냥 놔두면 평생토록 흘러갈 수도 있는 흐름이다. 조사의 과정과 에스노그라피 작성에서 모두가 동의할만한 '끝이라는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연구자 자신이 '아,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결정하고 빠져나오는 그때 비로소 끝날 뿐이다. (물론 논문이나 결과물 제출 시한, 제한된 연구비, 심각하게 고갈된 체력과 그것을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 나이 등이 그 결심을 도와주기는 한다. 아아.... 마감 인생이여.)

다큐를 만드는 일이건 인류학적 연구와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건 쉬운 것은 없다. 하긴,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식은 죽 먹기도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라는 것, 해 보면 안다. 식어서 굳고 말라 떡져버린 죽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천막 안에서 숨죽이며 며칠이고 몇 주고 기다리는 자연 다큐멘터리 작가가 드디어 원하는 장면 한 컷을 얻어내 편집실로 달려올 때의 기쁨, 그 기쁨이라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그들은 그렇게 카메라와 장비를 챙긴다. 희망이 절망이나 실망이 될 때도 많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희망은 희망인 것이다.

편집실에 갇힌 다큐 작가들과, 현장연구 때문에 맘졸이고 부담스러워하는 주변의 인류학자들(그리고 내가 아끼는 '학생 인류학자들') 모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라는 푸념도..... 이해한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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