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5일 목요일

타협과 어정쩡함이 만들어내는 꿈: 인류학

인류학은 특정 사회의 문화와 그곳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면서도 거리를 두라고 하는 모순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학문이다. 그것이 쉽게 가능한 것은 분명 아니고, 실제로는 정말 가능한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모호함 속에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인류학이라는 우산 아래에 들어와 있는 것은, 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나 그 모순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모순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책에서 얻지 못하는 배움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당신들의 문화적 특성을 내가 설명해 줄께!!”라는 허세나 오만도 아니고 “나는 당신들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니 백지와 같은 나를 가르쳐 주세요”라는 극단의 굽신거림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서있는 어정쩡한 상황이 차라리 만족스러운 상태. 어정쩡함이 차라리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방패막이 레이블'이 어쩌면 인류학이 아닐까. 그리고 어정쩡한 어떤 자리의 인류학자가 현장의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타협의 산물'이 인류학의 연구결과가 될 것이다. 좀 과하게 표현하여, 공감과 거리두기의 내재된 모순을 화해적 관계로 가장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인류학 방법론이 숨겨놓은 전략적 목표라고 한다면 실제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은 결국 어정쩡한 어딘가에 만족해야 한다는 체념적 사실의 내재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책과 글이 제공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 목표와 실제 사이의 간극을 메워준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 목표는 전복되고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실을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이 배움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고 시스템을 보여주고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는 이상이 인류학에 있다. 인류학은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세한 모습을 잘 그려내는  데 머물지 않고 그것을 사회적 현상으로 다룸으로써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맥락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의미와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변화까지 분석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수술실에서 권력을 이야기하고 부엌과 들판에서 여성과 남성과 가족과 제도를 이야기하고 몸을 통해 시선을 이야기하는/이야기하려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저 언덕 너머에 내가 닿아야 할 무지개의 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그곳에 가려는 각오와 포부가 인류학자들의 연구계획서에서 꿈틀댄다.

어쩌지 못하는 어정쩡함이 만들어내는 소박함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그리 소박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원대한 꿈. 그것이 인류학자들이 꾸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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