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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일 금요일

스펙터클을 통한 상징적 통합의 시도: 상하이 엑스포

그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도시였다. 여의도의 60%에 이르는 넓은 땅에 약 200여 개의 전시관이 들어섰다. 황푸(黄浦)강을 사이에 두고 푸둥(浦东)과 푸시(浦西)로 나누어 조성된 박람회장은 마치 강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뉘어 있는 상하이를 그대로 축소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강에는 무료 셔틀 여객선이 여러 개의 항로를 따라 다니고 박람회장 내부 도로에도 무료 셔틀 버스가 다니며 관람객이 가고자 하는 전시관과 가까운 정류장까지 태워 주었다. 201051일부터 6개월 동안 이 버스와 여객선은 한반도 전체 인구수에 거의 육박하는 7300만 명의 관람객들을 태우고 내려 주었다.

박람회장 사이의 황푸강 동서를 잇는 무료여객선

1999128일 중국 정부가 2010년 엑스포 개최 신청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3년이 지나 상하이가 2010년 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된 2002123, 상하이뿐 아니라 중국 전역이 들썩였다. 실제로 정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 때보다 더 많은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가 그리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푸둥, 난징루(南京路), 세기광장(世纪广场) 등 상하이 시내뿐 아니라 동네마다 민속악기를 동원한 축하 잔치가 밤새 이어졌고 선정 결과 발표 후 사나흘이 지나도록 상하이의 방송들은 관련 뉴스와 소식, 축하공연만으로 프로그램들을 채우고 있었다. 상하이 시 당위원회 기관지 <해방일보(解放日报)>는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호외를 발행하여 상하이가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되었음을 알렸다. 복단대학(復旦大学), 교통대학(交通大学), 동화대학(东华大学), 상해대학(上海大学) 등을 포함하여 상하이의 각급 학교들은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다양한 축하행사를 열었고 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거나 자원봉사자로라도 참가하여 자신과 상하이와 중국의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상기된 표정과 쉰 목소리로 전달하였다.

상하이 엑스포 개최 성공 소식을 방송으로 보면서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축하 행사장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들이었다. 개최지 선정을 축하하는 슬로건들 중 눈에 띈 하나는 우리가 (베이징 올림픽 개최 성공에 이어) 또 다시 승리했다(我们又赢了)”라는 문구였다. 상하이 사람들에게 엑스포 유치는 성공을 넘어 승리를 자축할만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적으로 삼아 그를 쓰러뜨리고 쟁취하는 것이 승리라면 엑스포 개최 성공은 200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상하이가 지구화의 전쟁터에서 얻어낸 전리품이었다.

지하철 손잡이의 엑스포 광고


엑스포 유치가 확정된 후 상하이는 다시 변신하기 시작했다. 엑스포를 준비하면서 상하이가 보여준 변신 과정은 그 속도와 규모에 있어 가히 압도적이었다. 2년 정도의 현지조사를 마치고 상하이를 떠나오던 2004년만 해도 3개 노선에 불과하던 지하철이 엑스포 개막에 맞추어 10개 노선으로 늘어났다. 여러 층으로 켜켜이 쌓인 순환도로와 고가도로에도 불구하고, 급증한 개인 차량들 덕에 출퇴근 시간이 아니더라도 상하이의 교통체증은 더 이상의 해결책은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지하철이었고 10개의 노선이 상하이의 지하세계를 거미줄과 같은 모양으로 변화시켰다. 그런데 엑스포 개막일 이전까지 6-7개의 노선이 동시에 공사를 진행하느라 상하이 전역은 몸살을 앓았다. 막혀버린 도로 때문에 난 짜증은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적을 통해 청각적으로 전화(轉化)하였다. 가뜩이나 여름이 더운 상하이에서 차량과 건물의 열기, 그 열기를 누그러뜨리려는 에어컨의 또 다른 열기는 땀과 범벅이 되어 사람들의 코와 입을 턱턱 막았다. 2009년 만난 한 택시기사는 “사람들을 이렇게 불편하고 짜증나게 하면서까지 엑스포를 준비하는 것은 정부가 잘 못 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불가능해 보이던 지하철 공사, 푸둥과 푸시를 잇는 몇 개의 다리 건설, 도로 정비, 박람회장 공사는 2010년 5월 이전에 마치 마술의 힘을 빌린 것처럼 모두 끝나버렸다. 아주 오래 전부터 원래 그 모습으로 있어왔던 것처럼, 뚝딱거리는 기계음과 굴착기 소리가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엑스포가 개최되었다.

사람들은 보안과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에 큰 이견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모든 지하철역의 모든 통로에서 가방을 엑스레이 검사기에 통과시켰다. 엑스포의 중국관에 입장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몇 개 되지 않는 입구에 길게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음식물, 긴 우산, 라이터 등은 반입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수긍하며 금속탐지기를 지나 ‘도시가 생활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城市让生活更美好; Better City, Better Life)’는 바로 그곳으로 들어가 현대 산업기술과 미디어의 발달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며 조금 전까지의 고생은 모두 망각의 강으로 던져 버렸다. 1918년 쑨중산(孙中山)이 [건국방략(建国方略)]에서 동방의 대(항구를 만들기 위한 거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푸둥에 서서 세계 192개 나라를 만나게 된 것이다이렇게 엑스포는 그 시간 상하이에서 경험하는 일상이 되었다

관심

엑스포가 일상의 한 영역으로 들어오자마자 새로운 업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관 입장을 위한 번호표를 받기 위해 이른 새벽에 대신 줄 서주는 직업이 생겼으며 박람회장 곳곳에서 자신들이 구한 중국관 입장용 번호표를 적절한 가격에 판매하는 암표상들이 생겨났다. 한 전시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2시간, 유명 전시관에서는 최장 7시간까지 줄을 서야 하는 상황에서 10위안짜리 휴대용 의자는 박람회장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업의 귀천이나 합법성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휴대용 의자

1851년 런던에서 처음 열렸던 만국박람회가 그랬던 것처럼 2010년의 상하이 엑스포 역시 시각적 경험으로 구성되었다. 150년 이전 박람회를 통해 사람들은 근대를 경험하고 상품의 세계를 만났다면 그로부터 150년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상하이 사람들은 디지털 미디어의 화려한 세계를 목격하였다.

사실 신기한 볼거리라는 것이 상하이 사람들에게 그리 새로운 경험은 아니다. 남경조약 이후 상하이는 서구의 문물과 생활방식이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였고 1930년대 이전까지 동양의 파리라 불릴 정도의 면모를 갖추고 있던 곳이라 엑스포의 개최를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라 하기는 어렵다. 엑스포가 보여준 것은 오히려 시각적 스펙터클을 동원한 상징적 통합의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행사장에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이미지들로 채워진 볼거리들을 장치하고 그 볼거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상하이의 뜨거운 햇볕아래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또 다시 볼거리가 되면서 엑스포의 상징적 가치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이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게 되었으니 이 정도의 고생은 참아낼 만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가치. 그리고 여기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매일 다른 장면을 사용하지만 전달하는 내용은 반복되는 화면들. 이는 매일 밤 뉴스를 통해, 언론을 통해 재생산된다. 매일 새벽부터 와서 열 번 혹은 스무 번 이상 관람한 관람객을 찾아내 전하는 흥분된 인터뷰, 기대에 찬 상기된 표정으로 줄을 서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엑스포가 만들어낸 보다 중요한 볼거리였다.
우리가 또 승리했다는 구호에서 볼 수 있던 것처럼 엑스포가 강조한 것은 우리 중국이었다. 과도한 빈부격차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동요를 저지하고 우리 중국이라는 경계 안에서 그 개인들을 통합시키는 것이 엑스포의 열망이었다. 이 열망은 엑스포 개최에 맞춰 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을 대상으로 엑스포 관람 캠페인을 실시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화교 여러분, 고향에 와 엑스포를 관람하세요"(华侨华人回家看世博)라는 제목의 프로모션이 그것이다. 자본을 가지고 있고 외부 세계에 대한 경험까지 있는 화교들에게 자신감을 계속 불어 넣어주고 그들이 '우리 중국'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더 큰 탄력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이 프로모션에서 읽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엑스포 내 상하이관의 타일그림의 벽. 일정 시간마다 그림이 바뀐다. 




또한 도시의 이벤트가 국가 전체의 이벤트가 되고 연해지역과 동부의 일부 도시들이 중국 전체를 견인하는 현 중국의 특징 역시 엑스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论)’을 실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 실천의 결과가 모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도시가 생활을 더욱 아름답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활이 그 도시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일상에 엑스포는 그렇게 들어왔고 그렇게 사라졌다. 상하이 사람들은 마치 의례를 통과한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관광 특수를 맞아 올랐던 각종 요금과 물가는 그러나 제자리를 찾지는 않았다

(이 글은 인천대 HK중국관행연구사업단 웹진에 쓴 글입니다. 이곳에 옮기면서 사진 일부는 바꾸어 올립니다. 웹진 글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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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일 목요일

인터넷 엑스포

(2010년 4월 29일 쓴 글입니다. 이전 블로그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网上世博"

5월 1일 개막을 앞둔 상하이 엑스포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전시장이고 다양한 매체들의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주최측은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08년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뤄내었(다고 믿)고 이제 그 경험을 엑스포에까지 연결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충분히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중국의 인터넷은 아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인터넷 사용 현황과 관련 정보는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발전의 성과를 엑스포를 통해 과시하려는 욕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51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만국박람회'가 열렸을 때부터 이런 전시회는 근대성/현대성을 보여주는 데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비단 엑스포 혹은 만국박람회가 아니라 할지라도 무엇인가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은 어떤 사회나,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요.

중국의 입장에서는 2008년 올림픽을 통해 화려함을 보여주었고 이제 2년이 지난 지금 엑스포를 통해 자신들의 현대화된 모습, 기술적 진보 등을 보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엑스포의 각 전시관마다 인터넷을 이용한 설명을 제공하고 갖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발전은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이전까지 정부나 권력에 독점되었던 '말하기 채널'이 다변화되고, 제한된 수준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중국에 그대로 적용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최근 구글의 철수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이 과시하고 싶은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인프라의 구축은 역시나 '제한된 수준'에서만 이용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뭐 최근 한국의 상황도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 씁쓸합니다만.)
아직도 여러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그토록 자랑하고 싶어하는 과학기술의 혜택으로부터 크게 소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개방. 소통, 공유라는 웹 2.0 시대 인터넷의 철학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제대로 통용되고 있는 것도 아니구요.

상하이 엑스포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놀라운 성과를 보여줄 것입니다. 저 역시 보고 싶고, 제 눈으로 본다면 정말 놀랍고 신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조직위원회와 관계 기관이 '인터넷 엑스포'에 대해서 자신있게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정말 잘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휘황찬란함에 가려진 몇 가지 현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기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의 '인'이라는 글자도 생각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 오늘 하루도 온종일 애쓰며 땀 흘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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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와 화교

(2010년 4월 27일 쓴 글입니다. 이전 블로그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세계 인민 대단결 만세!"




천안문 광장에 걸려 있는 문구입니다.
바로 옆에 걸려 있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그리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유명한 표현과 거의 항상 댓구를 형성하는 바로 그 문구입니다.

위 사진은 제가 2003년 찍은 것인데요, 오늘 아침 갑자기 사진 폴더 아래 깊숙히 감추어져 있던 이 파일이 생각난 것은 아침 출근길에 들었던 팟캐스트 때문이었습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팟캐스트 중 해외 화교들에게 엑스포 관람을 홍보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프로모션 기간 중 엑스포 티켓을 구입하는 화교들에게 특혜가 주어지며 상하이에 도착하면 공항에서부터 각종 편의가 주어질 것이다, 심지어 노인들의 경우는 더 많은 혜택이 있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프로모션 활동의 제목은 "화교들이여, 고향에 와 엑스포를 관람하세요"(华侨华人回家看世博) 입니다.

이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웹사이트 소개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http://www.overseas-expo2010.com

아래는 이 사이트의 초기 화면입니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이 방송을 들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중국 본토에 거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화교들까지 중국이라는 영역권에 넣으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자본과 외부 세계에 대한 경험까지 겸비하고 있는 화교들에게 자신감을 계속 불어 넣어주고 그들이 '조국'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더 큰 탄력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이와 같은 프로모션에서도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은) 무섭게도 느껴졌던 것이지요. '중국 위협론' 따위를 들먹이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다양한 힘이 어떤 동력을 만들어낼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 정도 이야기하려 합니다.

물론, 한국사회 또는 다른 사회들도 이런 움직임은 항상 있어왔고 지금도 있습니다.
다른 것은, 화교들의 경우 이런 프로모션 활동에 실제로 참여하고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막강한 자본(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5월 1일 개막하는 상하이 엑스포에 분명 많은 화교들이 참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꽤 먼 곳에서도 많이 올 것입니다. (오늘 들은 내용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화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모션이었습니다.) 이는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라는 성과와는 또 다른 성과로 여겨지고 그렇게 오랫동안 선전될 것입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지는 계속 주목해 봐야겠지요.

중국은 이번 엑스포를 통해 "도시와 생활을 더 아름답게 하자"는 공식적 슬로건 외에 이렇게도 외치고 싶을지 모릅니다.

"전세계 화교 대단결 만세!!"

화교의 힘...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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