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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3일 수요일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길거리 다니다가 노란 리본이나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 볼 때도 너무 감사해요. 잊지 않는다는 거니까. 같이 기억한다는 거니까. 그게 그냥 힘이 되요." (66쪽)

"사람들에게 바라는 거요? 잊지만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아, 세월호참사가 있었구나, 거기서 친구들이 죽고 하늘나라로 갔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너무 오래 질질 끄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진상규명이 안 됐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물고 늘어지는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 이해합니다. 이해해요. 이해하는데, 그래서 '잊지만 말아달라' 그것뿐이에요." (74쪽)

"사람들한테 뭔가 행동을 해달라는 것은 솔직히 너무 바라는 거구요. 생각해보니 기억해달라고 한 것도 너무 바란 거 같더라고요. 왜냐면 저는 그 사고를 당한 당사자니까 그 날짜라든지 사건이 어떤 건지를 알고, 잊을 수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저희도 다른 사건을 기억 못하면서 저희 사건을 기억해달라고 하는 게 좀 이기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대구지하철참사하고 천안함사건 날짜를 기억하려고 해요.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하고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만.
그래도 ... 자기가 잘못한 거는 인정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잘못한 거를 안 밝히려고 급급하잖아요. 그게 뭔가, 나이를 먹을수록 심한 거 같아요. 쪽팔리기도 하고 또 욕먹을 게 무섭고 하니까, 미안하다고 말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를 놓치면 더 힘들어지잖아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114쪽)

"우린 잘못한 게 없는데, 오히려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욕먹는 상황이고. 진실은 자기들이 잘못했으니까 말을 안 하겠죠. 정부는 계속 말 안 할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진실만 밝혀지고 그것만 인정받으면 될 것 같아요. 지원 같은 건 별로 필요가 없는데..... " (120쪽)

"세월호세대의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세월호세대랑 저희는 계속 같이 살아가야 하잖아요. 제가 '유가족입니다'해도 유가족이 되기 싫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평생 유가족이잖아요. 배려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어른들이 하는 거랑 세월호세대는 다르면 좋겠어요. '유가족이네' 하는 눈초리는 안 받고 싶어요. '아직도 우냐' '어떻게 웃냐' 이런 감정의 억압도 당하고 싶지 않고. 끝까지 같이 싸워주지는 못하더라도, 저한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156쪽)

"분명히 기억나는 건 애들이 배에서 탈출한 거라는 거. 나온 아이들을 그냥 앞에서 건진 것 뿐이지 적극적으로 배에 들어가서 뭘 어떻게 했거나 그런게 없으니까, 그걸 구조했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243쪽)

"아빠는 너무 미안한게 많아서 오빠 사진도 못 쳐다보겠대요. 아빠가 도보행진 했을 때 오빠 신발 신고 걸었거든요. 음.... 오빠한테 그런 아빠 마음 전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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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건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망각에 거스르는 투쟁이 스스로에게도 벅차고 힘드니 손잡아 달라는 기대는 아닐까?

2016년 4월에 출판된 이 책의 부제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이다.


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눈먼 자들의 국가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며,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우리가 착각하는 한, 점점 나빠지는 이 세계를 만든 범인은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은 또한 우리의 것이기도 한다. 그러니 먼저 우리는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나아지는 길이다. 우리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으로 선출한 권력은 자신을 개조할 권한 자체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 나아져야만 하며, 역사는 스스로 나아진 인간들의 슬기와 용기에 의해서만 진보한다."
(42-43쪽, 김연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에서)

이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거나 알고 있는 문장도 여기에 옮긴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64-65쪽, 박민규, '눈먼자들의 국가'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순간에 삶과 죽음을 바꾼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채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을 위해, 차가운 바다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10분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여전히 허우적 대는 총체적 무능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 질문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폭발적인 관심을 갖고 달려드는 책이 되지 않고, 한 명씩 한 명씩 순차적으로 읽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질문이 계속되고 기억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2014년 11월 9일 일요일

공포

공포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롤러코스터가 털털거리며 정점을 향해 올라갈 때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기다리는 상태가 공포이다. 저 골목의 어두운 모퉁이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 내가 무심코 돌아봤을 때 어떤 눈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상태 등이 공포를 만든다. 인간의 삶에서 죽음 이후의 삶만큼 공포스러운 것은,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공포는 (귀신이든 좀비든 괴한이든 어떤 물체이든) 특정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 무엇인가의 뒤에 숨어 있는 가정 혹은 가능성이다. 영화 <타이타닉>의 공포는 떠돌아다니는 빙산이 아니라 빙산의 뒤에 있었던, '부딪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의 공포는 제이슨이나 프레디가 아니라 그들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주칠 수도 있고 마주칠 경우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혹은 가능성'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 싱크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정, 환풍구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가정,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 우리에게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공포는 그런 가정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 닥쳐오는 바로 그 일이다.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무엇, 그럴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상태. 이것은 더 큰 공포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포는, 예측 불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예측이 어긋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는 신뢰가 깨지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동시에 신뢰가 무너져내리는 출발이기도 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를 읽다가)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비밀기지 만들기

대학교 때였던 것 같다.
반지하에 있는 방 하나가 나의 방이 되었다. 집 현관 아래에 따로 있던, 창고로 쓰이던 공간이었는데 정리하고 도배하니 방이 되었다. 반지하여서 습기가 많고 침대는 항상 축축했지만 나 혼자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다. 화장실을 가려해도 불편하고 휴대폰이 없던 당시에 전화를 받기 위해서 올라가야 하는 상황도 불편했으며 어떤 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마당의 빗물이 넘쳐 들어와 물바다가 되기도 했지만 나만의 방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지트라 불리는 나/우리만의 공간은 무엇인가 비밀스럽지만 자유롭고, 공모와 계략에 연결되면서도 결국은 주된 생활공간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는 신비스러운 곳이다.

인류학을 복수전공하고 현재 다른 학교 대학원에 다니는 졸업생이 와서 추천한 책 [비밀기지 만들기](오가타 다카히로, 2014, 파주: 프로파간다)는 어릴 때 누구나 가졌던 비밀 아지트에 대한 로망을 보여준다. 도시와 자연의 틈새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창출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알려주고 실제의 사례들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예전에 [연필깎기의 정석]을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심지어 한국어 번역본을 낸 출판사도 같다!!)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구나. 어찌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구나. 별 것 아니라 생각하던 것이 사실은 꽤 많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었고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어 우리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던 것 뿐이었구나. 뭐 이런 느낌.

어릴 때 책상 아래 들어가 보자기나 이불을 의자까지 덮어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던 기억, 종이상자를 마루에 놓고 그것을 자신의 집이라 우기던 기억이 이 책을 통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어리던 시절에 아지트는 '무엇을 하기 위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아지트를 만드는 행위, 나/우리만의 공간을 만드는 행위 자체를 위해 남들이 나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라 믿었던) 비밀기지를 만들며 재미있어 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지금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 숨어버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우리는 나만의 장소에 대한 갈망과 욕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존재이다. 지금의 스마트폰은 기계 암호와 카톡 암호 등을 통해 철저하게 나만의 장소, 개별화된 장소가 된다.

그런데 아지트나 비밀기지는 '너에게만 알려줄께'라고 그 장소를 조심스럽게 알려줄 친구가 있던 시절의 일이라는 것이 다르다. 이 책이 보여주는 틈새에 대한 기억과 열망은 어쩌면 나의 비밀을 조심스럽게 공유하고 무엇인가를 유쾌하게 공모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열망인가보다.


2014년 6월 29일 일요일

좀비와 귀신과 인간, 그들의 시간

얼마 전에 "좀비는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과거가 삭제된 존재'"라고 쓴 적이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비로 변화한 존재와의 조우는 그의 과거를 생각해 볼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좀비와 달리 그들의 과거 때문에 두려운 존재들이 있다. 귀신 혹은 유령이 그들이다. 좀비와, 귀신 혹은 유령의 대비는 어느 정도 명확하다. 좀비가 텅빈 육체의 존재들이라면 귀신 혹은 유령은 육체를 결여한 상태에 가깝다(육체를 결여하고 있으나 인간에게 시각적으로 보이기 위해 육체를 '임시로' 갖는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좀비는 과거가 삭제된 존재라면 귀신/유령은 과거를 떠나지 못해 현재에 남은 존재들이다. 

귀신이든 유령이든, 혹은 그들이 깃든 집이든 과거의 사건이 중요하다. 그 과거는 오노 후유미가 [잔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몇 년 전 혹은 며칠 전의 '사건'일 수도 있다. 

귀신에게는 과거의 사건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과거가 현재까지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좀비를 과거가 삭제된 존재라 한다면 귀신은 현재가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비와 귀신에 대한 '대응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좀비에게는 현재적 처치(대개는 머리통을 박살내는 방식이겠지만)가 적합한 반면 귀신에게는 과거에 대한 해결만이 거의 유일한 치유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론적으로 귀신의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힘으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이 더 안타까운 존재로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다. 최소한 나에게는.

현재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 비단 귀신이나 유령에게만 필요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과거에 묶여 있는 귀신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더 간절히 필요하기에 인간은 공포문학과 영화를 통해 이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귀신과 유령은 그래서, 인간에 대한 강력한 은유이다.

(추기: 귀신들린 좀비가 있다면 정말 막강하겠는걸?)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좀비: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도시는 악이 상존한다."

사실 이 말이 정확하게 맞는 말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악'이라 생각하는 행동에 대해 그것의 행위자는 그것을 악이라 정의하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자신에게 도시는 악이 상존하는 곳이 아니다. 여러 낯선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일 뿐이고 자신은 자신의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행위를 반복하고 또 다시 기획한다.

그 행위자는 나의 옆집에 살고 있거나,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주쳤거나, 내일 가는 식당의 옆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 공포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더 크게 느끼는 감정적 반응이고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더 크게 느끼는 감정이라 할 때, 사회가 악으로 정의한 행위를 반복하는 자는 그 행위를 가할 상대에 대해 알고 있는 반면 그 행위의 대상인/대상이 될 사람은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공포란 후자의 몫이다.

기괴한 연쇄살인자는 자신만의 '좀비'를 만들어내려 하고 그 행위들은 중산층의 평온한 가족적 외형 속에 가려진다. 미국 중산층 가족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얇은 껍데기 속에 가려져 있는지, 그 속에 숨겨진 잔혹함의 상상력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문제는, 그 껍데기가 얄팍하기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라 정의되는 행위를 실제로 가려주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이 주는 무서움은 주인공 Q__ P__의 행위보다, '평범한 가족의 외피'에 둘러싸여 그것이 감추어진다는 데 있다.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반은 농담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이십대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누가 힘들고 고생스럽지 않겠냐마는, 수업과 과제 때문에 잠 못자고, 학자금 마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알바의 현장에서 마주친 진상 손님들에게 “잔돈 나오셨습니다”라는 말도 안되는 존대법을 쓰며 정신을 탈탈 털린 후, 결과적으로는 한 줄로 표기되는 스펙을 위해 자격증과 공모전 준비로 또 다시 밤 잠 못 이루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 비할만할까. 전에 쓴 글에서 영혼을 모두 빼앗겨버린, 좀비 형상의 알바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열정노동'이라는 이름으로, 기약없는 기대를 통한 자발적 피착취를 감당하는 영혼없는 알바생”을 만든 사회는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했던 말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힘들게 살아가는 청춘들, 21세기 한국사회의 이십대들을 다룬 또 한 권의 책이 등장했다.


오찬호 2013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고양: 개마고원




사실 나도 궁금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들이 왜 그렇게 인기인지. ‘세상이 힘들기는 하지만 조금만 참고 견디면 행복이 올거야’라는 말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세상이 힘든데, 세상이 이상하게 나를 쪼아대고, 경쟁이라는 이름 뒤에서 신자유주의가 맑은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서서히/급속히 번져나가는데, 견뎌내고 참아내라니. 모든 사람에게 차력사가 되라는 것인가. 아니면 위기와 위험을 피하는 방식을 타조에게 배우라는 것이거나.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 역시 자기계발서의 공허함이다. (아래는, 책에 나온 내용들 중 몇 곳을 옮겨 놓은 것이다. 빌려 읽은 책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참고하기 위해 옮겨 온 것이 많아 길다. 이리도 긴 인용들을 모니터로 보는 것이 피곤한 분들은 책을 구해서 읽어보시라. 매우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래에서 괄호 안 숫자는 쪽수. 약간 어색한 표현이나 비문으로 보이는 곳들은 한두 군데 수정함) 책을 옮겨온 것이 대부분인데, 이에 대한 주석 혹은 설명은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이 언제가 되든.


  • 각기 접근방식은 달라도 자기계발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성과'라는 결과물이다. 즉, 자기계발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동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십대는 과연 이런 자기계발이 추구하는 바를 달성하고 있기에 거기 목매는 걸까? 그러나 아무리 봐도 지금의 자기계발 현상에는 '이렇게 하라!'는 주문만 있지 그로 인해 '달라진 결과'가 없다. 그렇게도 자기계발이 현상황을 극복할 유일한 진리라면, 그래서 한 개인이 '예스'라고 응답했다면 그로 인해 조직에 적응이 되든지, 자아가 구체적으로 치료되든지, 아니면 평생에 걸쳐 '즐길' 어떤 기술이라도 연마되든지 해야 할텐데, 지금 도대체 어떤 결과가 이십대들에게 있단 말인가. 오히려 지금의 청년들은 그런 결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걸 특성으로 갖고 있지 않은가. (32)
  • 자아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기통제의 '자기계발'은 이십대에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잘 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으로 버틴다. "고생 좀 하자! 그러면 좋은 일 있겠지?"라며 자기희생을 합리화한다. 그러다 지치면 "조금 쉬다가 다시 달리자!"라는 누군가의 위로에 눈물 흘리며 다시 원래의 그 '길'에 올라선다. (59)
  • 시중에 출간된 자기계발서들을 얼핏 넘겨만 보더라도, 이 책들이 자신의 고통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임을 강요하고 있단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내 고통이 세상 누구나 겪는 성장통 정도로 간주되는 판에, 남의 고통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길까? 이렇게 자신의 고통도 늘 스스로 참아야 하는 것으로 강요되는데, 남의 고통까지 왜 신경을 써줘야 한단 말인가? '이런 철학'을 개인이 가지게 되면 그는 특정한 시각을 갖게 된다. 힘들어 죽겠다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에게 "어쨌든 자기문제지, 그것도 못 받아들여?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라고 반응하게 된다.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공감대 형성은 당연히 어려워진다. (89-90)
  • '남들보다 성공하라!'는 자기계발의 시대에, 노력한 만큼의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해도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누르는 것은 가능하다. 다른 이보다 '위'에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이들은 서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개인의 '신분 상승'이 실현되기 힘든 세상에서, 적어도 자기 노력의 결과가 평가절하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남의 추락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남의 결점은 작더라도 부풀려 보게 된다. 견고한 서열이 균열을 보이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48-149)


그리고 대학입시만이 공부의 대표가 된, 입시위주의 교육도 크게 한 몫 한다. 수능은 자신이 투자한 만큼 돌려받는, 가장 ‘객관적 지표’라고 믿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 학생들을 대상으로 4년간 입시 경험에 대해서 조사해보니 무려 78%가 수능배치표와 자신의 관계를 '비합리적인 강요'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수능성적에 맞는 학교를 '강제로' 골라주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십대 대학생들의 일상은 이 수능배치표에 너무도 강고히 얽매여 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로 암송되는 서울권 20개 대학의 배치표 순위가 이들의 삶을 지배한다. 그 배치표에서의 위치야말로 자신의 현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지표이다. 과거의 기억이 어떠했든, 현재 이들이 자기계발 시대를 살게 된 이상 그 기억은 이렇게 재구성된다. 수능배치표가 부여한 점수차는 타인과 자신을 구분, 구별, 차별해 주는 객관적인 숫자가 된다. 그것은 '별 것 아닌 숫자'가 아니라, 한 인간이 '시간을 얼마나 성실하게 사용했는가'를 증명하는 지표이다. 자신의 경쟁력을 드러내고 강조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숫자인 것이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되는 상황이다. 노력과 시간관리 등을 강조하는 '자기계발 논리'는 이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에서 수능점수의 '가치'를 당당히 증명해 준다. (144-145)
본문에 인용된 한 학생의 에세이는 수능이 어떤 성격인지 잘 보여준다.


  • 나는 경제학과를 2005년에 입학했다. 당시 나는 연세대 인문대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지원했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나의 선택이었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점수에 맞추어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개의 학과(경제학과 인문학)을 지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이렇게 선택하게끔 했을까? 대학을 6년째 다니면서 이러한 고민은 처음 해본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처럼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지원했을 것이다. 대학배치표는 수험생들을 위해 일종의 사회적인 합의에 따라 대학교와 학과들의 순위를 책정해 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학서열화는 참으로 편리하고 유용한 정보이지만 학과가 평생의 직업과 더 나아가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변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참으로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점수에 맞추어 서강대 경제학과를 지원했다. 왜냐하면 수능점수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수능 점수는 475점 어치의 '상품권'과 같았다. 상품권은 그 범위 안에서 물건을 살 수 있지만 거스름돈은 주지 않는다. 우리가 10만원 권 상품권을 가지고 쇼핑을 할 때, 어떻게든 10만 원을 다 쓰려고 노력하듯, 나 역시 나의 475점을 어떻게든 남김없이 다 쓰려고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수능점수가 재수까지 해서 힘들게 획득한 상품권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내가 살 수 있는 최대의 가격표가 붙어 있는 서강대 경제학과와 연세대 인문학과에 사용했다. 손해 보기 싫은 그 심리, 남들이 7만 원짜리 상품권으로 살 물건과 내가 10만 원짜리 상품권으로 살 물건이 같으면 손해라는 그 심리가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다.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물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400점짜리 상품권으로 살 수 있는 다른 대학의 '영화학과'를 무척이나 가고 싶었다. (142-143)


그리고 수능은 단순히 성적에 따른 위계만 만들지 않는다.


  • 한국 대학들의 서열은 단지 수능점수만으로 구별되는 게 아니다. 경제적 지표로도 나뉘어진다. 각 대학에서 공시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학자금 대출현황을 확인해 보면 서울지역 주요 23개 대학의 학자금대출자 평균비율이 재학생 대비 14.5%인데, 서울대와 연세대는 불과 5%대다. 하위 6개 대학은 상위 4개 대학보다 학자금대출자 비율이 11%가 더 높았다. (199)


저자는, 현재의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는 말아야 하며 개인들의 힘이 모여 작은 변화라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그것이 희망이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 우리의 이십대들은 여전히 '긍정'과 '희망'만을 강조하는 세상 한 가운데를 살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300만 권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200만 권이 넘게 팔렸다. 대학가에서는 유명 멘토들의 초청 특강을 알리는 현수막을 곳곳에서 보게 되는데, 그 내용들은 한마디로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이다. 이십대 청춘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라고 코너에 몰아놓고는 힘든 상황을 이겨낸 특별한 경우를 강조하는 건 이 사회가 실제로 공정하지 않은데도 이를 문제 삼지 말라는 격에 다름 아니다. 물론 긍정과 희망의 강조 이면에는 거꾸로 깊은 좌절에서 오는 패배의식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세상이 뭐 바뀌겠어? 세상이 원래 다 그런 거지, 사회는 어쩔 수 없는 거라니까! 바뀌는 게 없는데 환경 탓이나 하고 있다간 나만 손해잖아! 그 사이 남들이 나를 앞지른다고!' 맞다.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에 맞춰 나를 바꾸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이득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인류는 세상을 바꾸면서 진보해왔다는 점을. (190-191) … 인류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인종차별을 부당하게 여겨 철폐하고... 이런 변화는 기존의 사회가 문제 많다는 걸 직시한 개인들의 노력에서 시작된 일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 또 문제라면 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를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원래의 것이 옳은 듯 착각할 뿐이다. 그러나 착각이 깨지면 그 사회는 절로 좋은 쪽으로 구성원들을 이동시킨다. 사회는 그렇게 '개인들'로 인해 변하는 것이다. (192-193)
  • 비록 평범한 목표를 가지고 살더라도 인간다움이 지켜지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꿈꾼다. "닥치고 성공!"이라는 논리에 근거하여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오류만이라도 줄이려 노력한다면, 굳이 '탈출'을 권할 필요도 없는 건강한 사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힐링'이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없는 세상이 등장할 때, '아픈 청춘'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이십대를 향한 어쭙잖은 '감성팔이 위로'의 말은 당장 거둬들여야 한다. 진심으로 이십대를 사랑한다면 말이다. (234)

솔직히 말해 (그것에 대한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어쩌다보니 사회에서 소위 기득권층이라 이야기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주인공들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그들이 처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현실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도 여전히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라"라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만드는 데 함께 하자"라고는 이야기하고 싶다(그 일에 나도 좀 끼워달라는 말이다). 희망은 누군가 선심쓰듯 던져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3년 9월 15일 일요일

철학자와 늑대

학과의 다른 선생님께서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북카페 행사에 소개하신다고 하여 읽은 책.

북캐스트 등에 이미 소개되어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던 책.

최근에 이런 류의 책을 읽은지 오래 되어 약간 낯설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을 책.

늑대를 키웠고 함께 생활했고 그를 보낸 철학자가 늑대를 통해, 늑대와 함께 행복과 소유와 시간과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 책. 사람을 '상대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이 왜 필요한 일인지, 이 세상에서 인간만이 우월하고 잘났다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질문하는 책.

"영장류는 행복을, 측정하고 무게를 재며 수량화하여 계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영장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비용-편익 분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
늑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늑대는 진정한 가치는 잴 수도 거래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끔은 하늘이 두 동강 나도 옳은 것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20, 22쪽)
"근거, 증거, 정당화, 보장. 정말 사악한 동물들에게만 필요한 개념이 아닌가? 불만이 많을수록 더 사악해지고, 화해에 무감할수록 정의는 더욱 필요해진다.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영장류만이 도덕적 동물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불만으로 가득하다." (112쪽)
 
"우리가 다른 동물들을 판단할 수 없다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면, 우리는 다른 동물들을 존경할 수 있다. 명료하지는 않다 해도, 이러한 존경심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동물들은 가지고 있다는 인식 위에서 시작될 것이다. 보통 누군가를 존경하는 마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점을 발견할 때 나타난다." (148쪽)

책의 곳곳에서 인간 자신의 삶을 거리를 두고 보도록 요청하는 진지하고 깊이있는 문장들이 살아있다.

"삶의 의미가 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에 있다는 생각은 추측하건대 무엇인가를 쟁취하려는 영장류적 영혼의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영장류에게 소유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영장류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의 사실이나 소유의 정도가 아니다.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느냐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면서도 우리 안의 영장류는 소유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주장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영장류가 되느냐의 문제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영장류는 우리가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목표가 된다. 영민함, 성실함, 거기에 운까지 따라 준다면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배우기 어려운 교훈은, 삶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피조물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순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영장류가 삶에 대한 그럴듯한 의미를 찾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것이다. 순간은 영장류가 절대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이다. 순간은 욕망하는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손을 뻗쳐 통과해 버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유는 순간들을 지워 버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소유하려 하고, 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거대한 땅 따먹기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우리는 시간의 피조물이지, 순간의 피조물이 될 수는 없다. 순간은 우리가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항상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다. 
'순간에 충실하라'는 피상적인 설교를 되풀이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라고 권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살면서 만나는 몇몇 순간들, 이 특정한 순간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순간들이 바로 인생 최고의 순간인 것이다." (319-320쪽)

사랑하던 늑대가 죽고 남겨진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브레닌을 묻던 밤, 랑그도크 지방의 살을 에는 추위와 장례식용 모닥불에서 번지던 밝은 빛의 온기. 그 안에서 인간 조건의 근원을 찾아본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희망을 주는 따스하고 너그러운 삶을 택할 것이다. 다른 편을 택한다는 것은 미친 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당도한다면 늑대의 냉정함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 힘들고, 차갑고,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삶을 살아 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바로 이 순간들이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 결국 우리의 담대한 도전만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만약 늑대에게 종교가 있다면, 바로 이런 교리를 들려줄 것이다." (330쪽)

이 책의 이야기는...... 들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강추!! 

 

2013년 9월 1일 일요일

연필깎기의 정석

연필을 아주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종이와 마찰하는 '스윽~스윽'하는 소리는 '다다다다 탁탁탁'하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보다 훨씬 정감있다.

연필 역시 기본적으로 문구류에 포함되고 문구류를 좋아하는 내가 연필을 좋아하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 여행을 가면 그곳의 연필을 사오는 취미가 생겼다.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 더 많은 연필이 생길테니 그것으로 컬렉션을 만들까, 잠시 생각했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은 취미가 아닌 관계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고 있다. (아래 사진은 곧 사용하기 시작할 최근 수집한 연필들. 국립중앙박물관, 상하이박물관, 타이완고궁박물원, 타이중의 국립타이완미술관, 그리고 사은품으로 받거나 문구점에서 구입한 연필들도 섞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재미도 있겠지만 현재 진행하는 수업과도 크게 관련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리스 2013 연필깎기의 정석: 문필가,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목수, 기술자, 공무원, 교사를 위한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파주: 프로파간다.

연필깎기의 정석이라니!!!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순수하게 연필 깎는 법을 알려준다. 연필의 구성, 칼의 사용법, 외날 휴대용 연필깎이부터 벽걸이형 연필깎이의 장단점과 각각의 사용방법, 그리고 전동 연필깎이라는 바보 같은 물건을 멸종시키기 위한 전략까지 순수하게 연필 깎기에 관련된 이야기만 일관되게 하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연필을 깎기 위한 매뉴얼로 찾아 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매뉴얼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 세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휴대용 외날 연필깎이를 몇 번 회전하느냐에 따라 연필이 어떤 변화를 보이는가까지 표로 알려주고 있으니.

이 책은 유쾌하다. 이런 주제로 이렇게 책을 쓸 수 있구나 생각을 하게 하고, 그런데 이렇게 책을 쓰려면 충분한 관찰과 글쓰기의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꽤 즐거웠다. ㅋㅋㅋ

"연필을 깎고 고객에게 연필밥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을 믿지 말라. 연필밥은 엄연한 연필의 일부이며 궁극적으로 고객의 것이다." (16) (저자는 현재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연필과 책 주문을 받고 연필을 깎아 보내주고 있다. 연필은 35달러. 해외배송도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의 홈페이지는 http://www.artisanalpencilsharpening.com/index.html)

"나는 연필 깎기 도구 가방 안에 항상 5.25에서 5.80 달러의 비상금을 넣어둔다. 현기증이 날 때 샌드위치를 사먹기엔 충분하지만 할 일을 내팽개치고 영화를 보러 가기에는 부족한 액수이므로 그 정도가 딱 적절하다." (23)

"나는 회전식 연필깎이의 칼날에 낀 흑연 가루와 나무 찌꺼기를 제거할 때 칫솔을 이용한다. ...  연필깎이 청소에 사용한 칫솔로 다시 이를 닦는 일은 없어야겠다." (25)

부록에는 세인트피터즈버그 '플로리다 안과'에서 주는 유익한 조언이 실려 있다. 병원 웹사이트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는데 다음과 같다: 막대기나 연필 같은 것에 눈을 찔렸을 때는 절대로 뽑지 마십시오. 그리고 안대를 느슨하게 붙이십시오. 이는 매우 심각한 응급상황이므로 즉시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225)

참 친절하기도 하네.

저자는 연필을 깎는 작업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몸을 쓰는 작업이므로 연필을 깎기 전에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시작할 것을 권고한다. 책을 따라가는 동안 연필을 다루는 이 섬세함에 감동하게 된다. 장인의 모습이 이런 것이구나.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에서 나온 먼지 같이 고운 연필밥은 다람쥐 발을 연필밥 통에 담갔다 뺀 뒤 흑연 및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진 흔적을 따라가 다람쥐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니!! (118)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풍부한 아이디어..... 아.... 놀랍다!!

연필에 관심있는 분들은 책의 부록에 수록된 각종 연필 관련 사이트와 박물관 리스트도 참고하시라.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기억과 기계와 인간: 오영진의 <어덜트 파크>

코엑스에 갈 일이 있어 조금 일찍 가 서울 국제도서전에 들렀다. 가지고 있던 어떤 신용카드 덕에 공짜 입장권을 받아 3,000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이런 공짜 입장은 행사장 안에서 경험한 엄청난 지름신의 강림을 조금이라도 위안하려는 주최측의 배려일 수도 있다. ㅠㅠ)



얼마 전 우연히 책 소개를 보고 다음 학기 <디지털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에 관련될 수 있겠다 싶어 제목을 저장해 놓은 책이 있었다.

오영진의 <어덜트 파크>(2013, 창비).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을 했고, 평소 만화를 잘 안 보는 사람이지만 이 정도의 분량이라면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도서전에서 창비 부스에 들렀다가 이 책을 발견. 보려고 했던 책인데 심지어 싸게 살 수 있다니!!

며칠 전 엄기호 선생님은 트위터에서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엄쌤의 설명 그대로다. 이 책은 관계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장기매매라는, 무엇이든 팔고 살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비열한 얼굴도 그대로 보여주며 한국사회의 직장에서, 술집에서, 휴가를 위해 떠난 관광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와 함께 내가 (다음 학기의 수업과 관련하여) 주목했던 것은 기억의 문제이다.
기억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이 해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것이 항상 쉬운 것이 아니어서 오래 전부터 인간들은 기억을 위한 보조장치를 활용해왔다. 동물의 뼈나 돌판을 지나 종이를 거쳐 '디지털 시대'인 지금은 USB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이 인간의 몸 외부에 위치하며 그 역할을 담당한다.
몸으로부터 벗어나 외재하는 기억들. 그 기억을 담당하는 기계들. 그 기계/기억과 대면하는 인간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내가 예전에 엄청나게 좋아했던, VHS 비디오 테이프로 봤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당신들(인간들)의 DNA 또한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이란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절점과 같은 것이다.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을 가지고 사람은 오직 기억으로 인해 개인일 수 있다. 설령 기억이 환상과 동의어라고 해도 인간은 기억에 의해 살아간다. 컴퓨터의 보급이 기억의 외부화를 가능하게 했을 때 당신들은 그 의미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인형사의 말)

오영진의 <어덜트 파크>는 <공각기동대>가 제기한 여러 주제 중 하나를 이어 받는다. 자본주의에서의 사람의 관계와 함께, 기억의 위치와, 기억의 장소인 인간/기계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가 될 것 같다. 그냥 읽어보시라.




2013년 6월 15일 토요일

홍은택의 책 <중국만리장정> (2013, 파주: 문학동네)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책인데도 빨리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나는 책이다.
그래서, 서둘러 기록으로 남기기.

홍은택의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그의 미국 자전거 횡단기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2006, 한겨레출판)이었다. 출판되고 몇 년 후에 읽은 것이었는데 그 때는 내가 자전거에 완전 꽂혀 있을 때였다. 당시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었고 자전거가 재미있었으며 친척들 몇 명이 우연히도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홍은택의 책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여행기였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전거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구입했던 자전거 관련 책들은 이런 여행기뿐 아니라 도심에서 로드바이크를 탈 때 지켜야 할 것들을 적은 안내서, 자전거의 메카닉에 대한 책들도 포함된다.)

나는 자전거에 초점을 맞춰서 그의 책을 읽었지만 그 책은 자전거보다는 여행의 길목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을 읽고 나서 나 역시 그가 따라 간 Trans American Trail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길을 혼자 가면 힘들테니 누군가를 꼬셔서 함께 가되 그가 운전하는 지원차량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렇게 뼈속까지 연도남이다.)

한참을 지나, 홍은택이 중국 자전거 여행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중국 자전거 여행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고 현대 중국 젊은이들이 워낙 많이 다녀서 웨이보나 중국 블로그, 각종 포털에서도 각종 여행기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야기를 전달할 줄 아는 홍은택의 책이다. 게다가 심지어 중국이라니. 이번에는 자전거가 아니라 중국이기 때문에 손에 들게 되었다. 주문완료 확인버튼을 클릭하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그의 시선을 따라 중국을 여행하는 기분에 들떠 있었다.

이 책만 놓고 보면 홍은택을 한국의 피터 헤슬러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피터 헤슬러의 <리버타운: 양쯔강에서 보낸 2년> (2003, 눌와)과 <컨트리 드라이빙: 자동차로 달린 7000마일 중국여행기> (2012, 중앙북스), 그리고 한국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Oracle Bones 같은 책들은 인류학자가 쓰지 않은 가장 인류학적인 책에 포함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중국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주한 경험들을 솔직하면서도 위트있게, 그러나 사람에 대한 존중도 놓치지 않으면서 보여주는 피터 헤슬러의 책은 중국에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한 번 정도 읽어볼만한 저작이다. 홍은택의 이 책 역시 자전거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마주한 경험들을 솔직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꼭 중국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재미는 일단 홍은택의 유머에서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상하이에서 교통법규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가장 피해보는 사람도 보행자다. 그들에게 길의 권리는 없다. 도시라는 정글에서 사자나 호랑이는 화물차나 버스 같은 대형차들이다. 그리고 관리들이 많이 타는 아우디 검정 승용차, 그들은 경적의 데시벨로 권력을 표시한다. 유리창이라는 방음벽이 없이 차도로 다니는 자전거에는 바로 귀에 대해 경적을 울리는 것 같다. 상하이에서 경적은 꼭 필요할 때 울리는 장치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운전자들이 경적을 누르지 않을 때야말로 위험한 상황이다. 졸고 있거나 동승자와 수다를 떨다가 한눈을 팔아서 미처 경적을 누를 때를 놓친 경우이기 때문이다. (35-36)

본문도 본문이지만 각 장에 붙인 소제목들은 제목만으로도 즐겁다. (만약 이 상태를 문자로 표현한다면 ㅋㅋㅋㅋ 정도 될 것이다.)

3장 아무도 양보하지 않을 거라는 예측 가능성
5장 여행은 로(路)를 잃어도 도(道)를 얻는 과정
11장 프랜차이즈화되는 중국
39장 권력자는 당대를, 시인은 천 년을 사는구나
등등.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중국이라는 과목을 학습하러 떠난 여행의 결과이다. 물론 그의 여행은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자전거가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날 것을 아직도 기대하고 있다. 그의 가족들은 반대할지도 모르겠지만.

학술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람의 눈으로, 사람의 속도로 중국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따라가는 동안 솔직한 중국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저자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의 팬이 되었다.

 

2011년 1월 26일 수요일

킨들 non-lighted leather cover 환불


네이버 전자책 카페에 올린 글 그대로 올려 놓습니다.
간혹 킨들이 멈추는 경우가 있는데 커버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전에는 온도의 문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관련 카페글은 http://cafe.naver.com/ebook/110003) 그런데 커버의 금속단자가 킨들 내부의 전류 흐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처리 방법을 기록한 것입니다. 

___ 

며칠 전부터 '먹통' 현상을 경험하고 아무래도 커버(non-lighted leather cover)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환불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미 작년 12월 아마존에서 공식적으로 이 커버에 대해서는 구입 시기와 상관없이 환불하겠다고 발표를 했던 터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문제가 된 커버는 이것: http://goo.gl/OJwuH)

(아마존에서 발표한 내용과 관련 기사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re have been some forum discussions regarding the non-lighted Kindle cover, and our engineering team is looking into this," the company said in an e-mail statement that was also posted to its customer forum where users were complaining. "Regardless, if anyone is having any problem with an Amazon-manufactured Kindle cover, please contact us at kindle-response@amazon.com, and we will be pleased to replace it for free or accept a return for a full refund, no matter when the cover was purchased." http://goo.gl/awNrf 에서 인용)

이곳 카페에 올리신 글들 검색해보니 절차 등에 대해 잘 설명해 주셨더라구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 경우에도 그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메일 보냈더니 바로 자동 답신 메일이 오더군요. 인터네셔널 사용자의 경우는 1-877-453-4512 or 1-206-922-0844 로 전화하라고 하더라구요. 스카이프 이용해 오늘 아침에 전화했습니다. 

영어로 말을 해본 건 몇 년 전 양쯔강 지역 조사갔다가 배 안에서 만났던 서구인들과 잡담한 게 전부라 무척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편하게 잘 이야기해 주더라구요.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하니 아주 천천히,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전화할 때 계정 정보를 열어놓고 전화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킨들이 얼어붙었다, 문제가 있는 그 커버 사용하는데 그것이 문제의 원인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이메일 주소, 이름, 카드의 청구지 주소 물어보고 환불해주고 25불 더 줄테니 전등 달린 커버 구입할 때 쓰라고 하더군요.(이 돈으로 다른 콘텐츠를 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환불은 업무일 기준으로 약 3-5일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전화 끊으니 바로 같은 내용의 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자세한 환불 내역에 대한 메일이 다시 왔군요. 제가 이미 냈던 운송료까지 계산하여 환불되네요.) 

여러 포럼과 블로그 등에 있는 포스트들에 따르면, 전등 없는 커버의 경우 2-3주까지는 괜찮다가 그 이후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소수에게 발생한다고는 하지만 그 소수가 꽤 많더군요.^^) 저 역시 사용한지 약 두 달 정도 되었으니까요. 혹시 이 커버 사용하시는 분들은 그냥 미리 환불조치를 취하시는 것이 마음 고생을 덜 하는 길일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커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일단 집에 있는 인터파크 비스킷에 딸려온 메모리폼 파우치에 넣어봤는데, (킨들과 비스킷은 폭이 동일합니다. 비스킷이 위아래로 더 깁니다) 파우치가 폭신하기는 한데 액정을 제대로 보호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꺼낼 때 킨들을 꽉 잡아야 하니 기계에 무리한 힘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쉽게 빠지지 않아 꺼낼 때 떨어뜨릴 가능성도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M-edge 알아보고 있습니다. 전등달린 킨들 커버는 무게도 좀 나가고, 전등도 잘 쓰지 않게 될 것 같아서지요. http://www.oberondesign.com/shop/cart.php?m=product_list&c=81 같은 곳에 있는 것을 쓰면 멋지겠지만 너무 비싸서 마음은 접었습니다. ^^

어쨌거나, non-lighted leather cover 쓰시는 분들 참고하십시오. 여기에 관련 정보 올리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킨들에서 중국어 문서 보기

킨들에서 한글 폰트뿐 아니라 중국어 간체 폰트도 제대로 지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글 폰트가 지원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쁘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냥 읽을만합니다. 굳이 탈옥하지 않아도 읽는 데 큰 지장이 있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취향의 문제겠지요.) 저 역시 그런 문제를 지적했구요. 

전자책 형태로 '정식으로 나온 중국어 책'의 경우는 테스트를 하지 못했구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 hwp로 되어 있는 중국어 간체 문서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문서를 txt로 전환하여  calibre에서 다시 mobi로 전환하고 메일을 이용해 킨들에 넣었더니 간체들은 다 깨져서 나오더군요. 그래서 다시 실험을 했습니다. UTF-8 형식으로 텍스트 파일을 만들고 그것을 그대로 "사용자이름@free.kindle.com"으로 보냈습니다. 어떤 포스트에서 아마존을 통해 컨버팅하면 간체가 깨지지 않는다는 걸 읽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성공입니다. 텍스트 파일을 calibre로 전환하지 않고 그대로 메일 통해 아마존을 통해 전환하면 깨지는 글자 없이 잘 나옵니다. 혹시 가지고 있는 중국어 간체 문서들을 킨들에 넣을 때는 참고하세요. 

(booknreader.com에 올린 글입니다.)

킨들 사용 시작

2010년 11월 11일 아마존 통해서 주문, 18일 손에 쥐었습니다. 


집이든 학교든 컴이 항상 켜져있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어 와이파이 버전으로 주문했습니다. 와이파이 버전이 3G + Wifi보다 50불 저렴한데 잘 한 선택이라고생각합니다. 자료를 받거나 주문할 때만 집에서 와이파이 켜고 사용하고 그 외에는 와이파이 꺼버리고 읽는 용도로만 사용합니다. 


아직 한글 자료는 안 읽어봤구요. 영어 PDF를 그대로, 그리고 같은 자료를 calibre로 전환해 킨들에 넣고 읽어 봤는데 양쪽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PDF 그대로 읽는 것이라(물론 가로모드) 폰트나 문서의 포맷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대신 글씨가 아무래도 작다는 단점이 있구요, 후자처럼 calibre로 전환할 경우 킨들이 제공하는 텍스트 크기 변환 등의 기능은 사용할 수 있는 대신 포맷은 완전히 깨져버리더군요. (제가 아직 초보라 좋은 방법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유용한 방법 아시면 좀 알려 주세요. ^^) 


테스트 삼아 아마존에서 필요한 책 하나 주문해 본 결과는 대만족. (물론 1-click 구매를 이용했는데, 클릭하면 한 번 정도는 더 물어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클릭하자마자 바로 결제되더군요. 진짜 1-click 구매입니다. 다음에는 더 신중해야겠습니다.) 읽기도 좋고 다양한 포맷, 글자크기 변환 등이 가능합니다. 


오늘은 calibre 이용해 신문 보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China daily와 중국어로 된 남방주말 두 개를 시도했습니다. calibre의 이메일 전송 기능을 이용했는데 china daily는 리스트보기와 모든 기능이 완벽하게 제어되는 상태로 킨들에 들어왔으나 중국어 주간지는 킨들에 메일로 전송되지 않았고 Kindle for PC로 읽어본 결과 글자가 다 깨지더군요. (킨들에서 중국어 간체 자료는 어떻게 보는건가요? 따로 설정해야 하나요? 이 역시 고수님께서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 


가볍고 손에 들기 쉽고, 뭐 이런 정도의 장점뿐 아니라 실제로 읽을 거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놀라운경험을 시작했습니다. 며칠 사용한 지금은 아주 만족스럽고 마눌님께는 한국에서 나온 이북리더를 하나 사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킨들 고민하시는 분들, 특히 이북리더로 영어 서적이나 자료를 읽으셔야 하는 분들께서는 킨들 선택하셔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booknreader.com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