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한국사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한국사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6년 12월 2일 금요일

떳떳함에 대하여

며칠 전 수업 시간의 일이다. 80명이 넘는 교양수업인데 학기말이 거의 다가왔지만 한 가지를 이야기해야겠다고 운을 띄웠다. 일종의 '꼰대의 잔소리'라 생각하라고도 했다. 전 주 수업 때 출석만 부르고 빠져나간 학생들이 몇 명 있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심산이었다. 가끔 한두 명 정도가 그런 적이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었는데 전 주 수업 때는 서너 명 정도가 그랬길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작정하게 되었다.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들에게만 따로 이야기할까 하다가, 전체를 대상으로 짧게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대학생 때 아니면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냐 싶기도 하고 나 역시 대학 생활 때 그러지 않았던 것이 아니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야기는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016년 11월을 지나고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석만 부르고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다. 한두 명 정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지난 시간에는 몇 명이 더 있었다. 대학 때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니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출석만 부르고 나가는 것은 이름과 몸을 분리시키는 일이다. 이름은 남겨놓고 몸만 빠져나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정체성은 이름과 몸이 결합되어 있을 때 만들어진다. 감옥에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일을 포함하여 이름을 몸으로부터 강제로 분리해내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름과 몸이 결합되지 않은 상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는 것은 이름과 몸의 결합을 분리시켰기 때문에 나온 결과들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었지만 그가 읽은 연설문은 그의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2014년 4월 16일 대통령이라는 이름은 청와대 안에 있었지만 그의 몸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만 하지 정작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해야 할 일을 왜 하지 않았는지만 궁금할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겪는 일은 이름과 몸이 분리된 것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름과 몸이 분리되어 이름만 내걸었거나, 이름은 숨기고 몸만 무슨 일을 한다면 그것은 떳떳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떳떳했으면 좋겠다. 아파서 못 온 것은 아파서 못 왔다고, 수업 시간에 다른 일이 있어서 그것에 가야 한다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떳떳한 것이다. 수업 한두 번 빠진다고 치명적인 결과가 생기는 것 아니니 어떤 다른 일 때문에 수업에 못 온다면 떳떳하게 이름과 몸이 함께 가서 그 일을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야 그 일도 더 즐겁지 않겠냐고 했다.

2016년 11월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6년 12월 2일 오늘 페이스북에 핫 플레이스가 등장했다. 링크한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철학과 소신"에 따라 표결할 것이니 탄핵 반대 의원 명단은 삭제하라고 다른 의원에게 '충고'하고 있다.

철학과 소신이 있고 그것에 떳떳하다면 이름을 밝혀라. 이름과 몸을 분리시키지 말고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나서라. 몸은 국민과 나라 생각하는 것처럼 하면서 익명 뒤에 숨으려는 것, 보기 안쓰럽고 떳떳해보이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이름을 걸고 몸을 움직여 매주 토요일마다, 혹은 매일 저녁마다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 떳떳함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2016년 11월을 넘어 12월이 되었다. 떳떳하게 가자. 떳떳하게 새해를 맞이하자. 몸으로부터 이름을 숨기는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자.


2016년 4월 13일 수요일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길거리 다니다가 노란 리본이나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 볼 때도 너무 감사해요. 잊지 않는다는 거니까. 같이 기억한다는 거니까. 그게 그냥 힘이 되요." (66쪽)

"사람들에게 바라는 거요? 잊지만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아, 세월호참사가 있었구나, 거기서 친구들이 죽고 하늘나라로 갔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너무 오래 질질 끄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진상규명이 안 됐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물고 늘어지는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 이해합니다. 이해해요. 이해하는데, 그래서 '잊지만 말아달라' 그것뿐이에요." (74쪽)

"사람들한테 뭔가 행동을 해달라는 것은 솔직히 너무 바라는 거구요. 생각해보니 기억해달라고 한 것도 너무 바란 거 같더라고요. 왜냐면 저는 그 사고를 당한 당사자니까 그 날짜라든지 사건이 어떤 건지를 알고, 잊을 수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저희도 다른 사건을 기억 못하면서 저희 사건을 기억해달라고 하는 게 좀 이기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대구지하철참사하고 천안함사건 날짜를 기억하려고 해요.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하고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만.
그래도 ... 자기가 잘못한 거는 인정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잘못한 거를 안 밝히려고 급급하잖아요. 그게 뭔가, 나이를 먹을수록 심한 거 같아요. 쪽팔리기도 하고 또 욕먹을 게 무섭고 하니까, 미안하다고 말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를 놓치면 더 힘들어지잖아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114쪽)

"우린 잘못한 게 없는데, 오히려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욕먹는 상황이고. 진실은 자기들이 잘못했으니까 말을 안 하겠죠. 정부는 계속 말 안 할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진실만 밝혀지고 그것만 인정받으면 될 것 같아요. 지원 같은 건 별로 필요가 없는데..... " (120쪽)

"세월호세대의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세월호세대랑 저희는 계속 같이 살아가야 하잖아요. 제가 '유가족입니다'해도 유가족이 되기 싫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평생 유가족이잖아요. 배려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어른들이 하는 거랑 세월호세대는 다르면 좋겠어요. '유가족이네' 하는 눈초리는 안 받고 싶어요. '아직도 우냐' '어떻게 웃냐' 이런 감정의 억압도 당하고 싶지 않고. 끝까지 같이 싸워주지는 못하더라도, 저한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156쪽)

"분명히 기억나는 건 애들이 배에서 탈출한 거라는 거. 나온 아이들을 그냥 앞에서 건진 것 뿐이지 적극적으로 배에 들어가서 뭘 어떻게 했거나 그런게 없으니까, 그걸 구조했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243쪽)

"아빠는 너무 미안한게 많아서 오빠 사진도 못 쳐다보겠대요. 아빠가 도보행진 했을 때 오빠 신발 신고 걸었거든요. 음.... 오빠한테 그런 아빠 마음 전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294쪽)


--------------

이렇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건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망각에 거스르는 투쟁이 스스로에게도 벅차고 힘드니 손잡아 달라는 기대는 아닐까?

2016년 4월에 출판된 이 책의 부제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이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청년과 청춘

1970년대와 80년대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떻든간에 소위 ‘청년문화’라는 것이 존재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포크, 생맥주, 청바지로 대표되는 것이든 화염병과 ‘가투’, 그리고 뒤이어 막걸리 집에서 고래고래 소리 높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방식이든, 청년(靑年)들, 즉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 세대로 범주화되는 집단의 독자적인 문화적 양식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청년이 이와 같은 '대학문화'에 익숙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을 다루는 많은 책들에서는 소위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포크가 당시 청년들의 특징적인 대중문화 장르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국한된 사실일 뿐이다. 포크와 청바지가 도시 지식청년들의 상징으로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남진과 나훈아의 음악은 당시 노동청년들을 중심으로 청년문화의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 한국사회의 젊은 세대들이 청년 대신 청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음악의 영역에서 70-80년대에 필적할 청년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대략 청춘이라는 용어에 포함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20대들이 즐기고 좋아하는 소위 '문화적 장르'는 무엇일까? 그 시절 <쎄시봉>이나, 남진, 나훈아처럼 현재의 젊음을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70년대 송창식,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 남진과 나훈아, 80년대 산울림, 송골매, 조용필, 그리고 뒤 이어 김광석, 이문세 등이 담당했던 역할을 지금의 대중문화 영역에서 찾는다면 누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가 '청춘'이라 부르는 세대의 대표적 상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문화 시장을 장악한 아이돌에 대한 열광은 10대의 것으로 여겨지고 그것이 비생산적 혹은 잉여적 삶으로 치부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20대가 되면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로 숨어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롤(League Of Legend)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 것들은 ('팬질'과 유사한 이유로) 그다지 자랑할만한 일이 되지 않는다. 고군분투하고 열정을 드러내며 아파도 참아야 하는(!?) 청춘들에게 노는 일은 '잉여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되기 때문에 감춰야 할 것이지 자랑삼아 드러내기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어쩌면 청년이라는 용어대신 청춘이라는 용어를 갖게 된 것이 세대의 특징을 잃어버린 것의 표식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봄이라는 비유를 통해 '청춘'이 타자들에 의해 재현되는 순간부터 그들의 '상태'는 누구나 겪는 것, 지나가면 추억거리가 될터이니 지금은 각자 잘 알아서 견뎌야 하는 환상으로, 열정과 낭만이라는 허울의 포장으로만 남겨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청춘'은  스스로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존재로만 여겨지고 그들의 현실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들 자신만의 문제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특징을 상실한 것이 그들의 책임인가?

모두가 거쳐야 하거나 거쳤던 상황이지만 연속성은 단절되고 하나의 상태로만 뚝 떼내어져 그들 자신이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단계에 놓인, 청춘이라는 이름의 청년들. 사회에 의해 주어진 시련과 아픔이지만 정작 그에 대한 처방은 스스로 해야 하는 현실 속의 존재들. 이 존재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듣고 싶었다. 이번 학기 교양 수업에서 학기 후반에 청년에 대해 다루기로 한 것은 그 이유였다. (아래에서 파란글씨의, 들여쓴 문단의 글들은 수업에서 학생들이 쓴 것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발췌는 문맥의 희생을 필연적인 대가로 삼지만 그 절절함을 고스란히 전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행위이다.)

오래 전 이 블로그에서 썼던 것처럼, 어릴 때 각자의 꿈은 다양했었는데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오로지 하나의 꿈, 즉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 남는다.
대학은 우리에게 마치 약관동의처럼 군다. 동의해야만, 선택해야만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면서 말이다. 우리는 방법이 없다. 선택하는 수밖에. (김**)
대학에 들어오면 '넓게 생각하고 폭넓게 배우는 것'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취업'이라는 단 하나의 꿈을 강요받는다. 이 과정에서 '자기계발'이라는 포장은 모든 것을 개인의 역량에 맡기며 경쟁을 정당화한다. 열정페이와, 미래를 알 수 없는 '자발적 피착취'의 전형인 대외활동과 인턴 역시 '자기계발'의 과정이고 자기 노력의 산물이(라고 각인된)다. 자기계발서들은 '긍정에 대한 강박'을 만드는데, 긍정에 대한 강박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안 좋은 상황이나 문제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외부의 문제를 문제로 지적하기보다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에 대해서는 이원석 2013 [거대한 사기극: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북바이북)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지도 않은 미래에 치여 산다. 나보다 뒤에 있는 과거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앞서있는 미래에 쫓긴다. 내가 정해놓은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해야만 한다고 일컬어지는 일들을 해내야 한다. 몇 살 전에는 어학연수를 갔다 와야 하고, 몇 살 쯤에는 인턴을 해야 하고, 취업이 되어 있어야 한다. 대학생의 생활은 자신을 다 담지도 못하는 자기소개서를 벗어날 수 없다. (조**)
초등학교 때에는 하면 즐거울 일을 꿈으로 삼았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는 하면 덜 괴로운 일을 꿈으로 갖게 되었다. 그리고 포기에 익숙해져버렸다. (권**)
 대학교는 힘들었다. 생각했던 푸르른 나날보다 까만 날들이 더 많았다. 대학 생활은 돈과 사랑을 포기해야 얻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돈을 얻으려면 대학과 연애를 포기하면 됐고, 연애를 얻으려면 돈과 대학을 포기하면 됐다. 셋 다 가지고 싶었던 나는 알바도, 연애도 놓지 않았다. 물론 학업도. 그래서 얻은 건 하나였다. 병. 몸과 마음의 병. 사람들은 그걸 젊음의 흔적, 청춘의 표식이라고 그럴싸한 포장지를 둘러주었다. (황**)
무엇을 내어줘야지 이 끔찍한 물질만능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을 내어줘야지 난 내 꿈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까. 영혼과 자존심을 다 내걸어도 힘들 것이다. 평생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지금의 청년들의 삶은 좋아하는 것 하나를 이루기에도 벅차다. (송**)
사회는, 그리고 '기성세대'는 '청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의 상당수는 청년들의 삶의 가운데에 서서 함께 세상을 보려 하지않고 '나도 한 때 그랬지'라는 경험적 오만의 표정을 지닌 채 외부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나도 예전에 트위터에 이렇게 썼던 적이 있다: "이십대에서 발견되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그들을 프리터족, 니트족, 캥거루족 등의 단일한 용어로 묶어내는 것은 이십대를 설명하려고는 하지만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는 시도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정작 자신은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삶에 굴곡이라곤 없었을 것 같던 약력의 이름난 교수가 그런 이름으로 책을 냈다. 책은 베스트셀러라는 명칭을 얻어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전 세계 수십, 수백, 수천만의 아픈 청춘들에게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나도 그 아픈 청춘들 중 하나였다. 책에서 얻고자 한 건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지만, 책은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말했다. ‘네 탓’ 이라고. 아마 그 책을 산 사람들은 덧난 상처에 바를 약을 찾고 싶었던 것 같은데, 후시딘이 아니라 물파스를 산 것 같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아픈 청춘들은 마음 한 구석이 쓰라리고 또 쓰라렸다. (황**)
한국 사회에서의 청년들은 기성세대라는 수많은 관객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외줄의 중간에 위태롭게 서있다. 무섭다고 뒤로 물러서면 “젊은이니까 더 거대한 꿈을 키워야한다. 꿈꾸지 않는다면, 돌아오지 않을 젊음을 낭비하는 것이다”라며 관객들에게 야유를 받을 것이고, 무서움을 이겨내 앞으로 나아가 보아도 “그것은 현실성이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만둬라”라며 오히려 더 호되게 관객들에게 야유를 받게 된다. (권**)
청년들 자신이 정의한 청년은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회에 맞춘 삶 속에 청춘은 없다. 청춘, 봄이라더니 세상에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봄은 없다. 남들이 그렇게나 청춘이라던, 그래서 부러워하던 스물 한 살의 중반에 서있는데, 나는 그렇다. 잡초라도 무성하게 자라면 날이라도 풀렸구나 할 테지만 아직까지 현실은 민둥산이 내 전부이다. 남들도 이럴지도 모른다. 물론 아닌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다들 꽃핀 봄을 웃음으로 지내고 있었으면. 언젠간 버티다가 보면 꽃은 필 거라고 생각한다. 가시뿐이라고 믿었던 선인장도 오래고 더딜지도 모르지만 언젠간 꽃은 피니까. 이외수가 그랬다. 존버 정신. 그냥 엄청나게 버티는 게 청춘의 전부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버티는 건 젊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니까. (황**)
한국사회는 청년들의 희생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근간이 된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희생이 청년들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원이 될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근저에 깔린 생각이다.

살아가는 모습으로서의 문화를 다루는 교양수업에서 청년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던 것은, 아프리카 부시맨이나 아마존 열대우림의 부족이나 중국의 소수민족을 다루는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이 아닌 청년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럴듯한 대답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밖의 시선으로, 나의 어설픈 경험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꼰대들 어법은 이것이다:  “나도 그만할 때 더 심한 어려움을 겪고 여기에 온거야. 그러니 엄살피우지 마. 젊을 때는 원래 그런거야.” 그리고 덧붙인다. “그러니 열심히 해라.”
‘열심히 해라’ 혹은 ‘힘내’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은 없다. 결국 잘못되거나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은 ‘열심히 하지 않은 자신’ 혹은 ‘힘내지 않은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이다. 자기계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일을 개인에게 맡겨 버리는 것이다.

그럴듯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열심히 해라”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열심히 하자”는 말은 하고 싶다. 어두운 동굴이라도 혼자 가는 것보다는 여럿이 앞뒤로 손잡고 가는게 그나마 낫지 않은가.  

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눈먼 자들의 국가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며,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우리가 착각하는 한, 점점 나빠지는 이 세계를 만든 범인은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은 또한 우리의 것이기도 한다. 그러니 먼저 우리는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나아지는 길이다. 우리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으로 선출한 권력은 자신을 개조할 권한 자체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 나아져야만 하며, 역사는 스스로 나아진 인간들의 슬기와 용기에 의해서만 진보한다."
(42-43쪽, 김연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에서)

이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거나 알고 있는 문장도 여기에 옮긴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64-65쪽, 박민규, '눈먼자들의 국가'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순간에 삶과 죽음을 바꾼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채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을 위해, 차가운 바다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10분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여전히 허우적 대는 총체적 무능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 질문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폭발적인 관심을 갖고 달려드는 책이 되지 않고, 한 명씩 한 명씩 순차적으로 읽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질문이 계속되고 기억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2014년 11월 9일 일요일

공포

공포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롤러코스터가 털털거리며 정점을 향해 올라갈 때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기다리는 상태가 공포이다. 저 골목의 어두운 모퉁이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 내가 무심코 돌아봤을 때 어떤 눈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상태 등이 공포를 만든다. 인간의 삶에서 죽음 이후의 삶만큼 공포스러운 것은,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공포는 (귀신이든 좀비든 괴한이든 어떤 물체이든) 특정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 무엇인가의 뒤에 숨어 있는 가정 혹은 가능성이다. 영화 <타이타닉>의 공포는 떠돌아다니는 빙산이 아니라 빙산의 뒤에 있었던, '부딪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의 공포는 제이슨이나 프레디가 아니라 그들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주칠 수도 있고 마주칠 경우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혹은 가능성'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 싱크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정, 환풍구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가정,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 우리에게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공포는 그런 가정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 닥쳐오는 바로 그 일이다.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무엇, 그럴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상태. 이것은 더 큰 공포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포는, 예측 불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예측이 어긋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는 신뢰가 깨지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동시에 신뢰가 무너져내리는 출발이기도 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를 읽다가)

2014년 9월 5일 금요일

도로명 주소에 대해

며칠 전 페북에 썼던 것인데, 기록을 위해 여기에도 남겨 놓기로 함)

도로명 주소는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원칙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빠르고 효과적인 이동이라는 근대적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도로명 주소 홍보에서 가장 많이 설명한 것은 '찾아가기 쉽다'는 것이다. 찾아가기 쉽도록 왼쪽, 오른쪽의 번지를 따로 부여하고 방향에 대한 기준을 설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머무르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찾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 도로명 주소는 삶의 터전인 마을이나 동네와 관련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것의 한계는 명확하다. 우리에게 住所는 말 그대로 사는 곳이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찾아오는 데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체국 직원분들이나 택배사 직원들의 관점에서는 다른 이야기도 가능할지 모른다. 여기에 쓴 이야기는 순수하게 거주자의 관점에서만 본 것이다)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1이 0으로 바뀌는 순간, 죽음

11% > 45%

영화 <I, Robot>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스푸너 형사는 사고로 차에 갇힌 채 다른 차와 함께 강물에 빠진다. 다른 차에는 소녀가 타고 있었다. 그들을 구하러 들어온 로봇 NS4는 소녀를 구하라는 스푸너 형사의 다급한 외침을 무시한 채 어린 소녀 대신 스푸너 형사를 강 위로 끌고 나온다. 왜 소녀 대신 자신을 구했는지 묻는 스푸너 형사에게 로봇 NS4는 "당신의 생존 가능성은 45%였지만 소녀의 생존 가능성은 11%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들은 스푸너 형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논리적으로 내가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 하더라도 그 소녀의 생존 가능성 11%는 그 부모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이라고.

이후 스푸너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비록 자신이 선택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소녀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숫자로 환원된 생존 가능성이 누군가의 희망을 완전히 앗아가 버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경험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 다른 삶의 시작, 죽음...... 그런데

많은 사회에서 죽음은 삶과 연결되거나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문화적 설명 체계를 갖는다. 티벳에서는 천장(天葬) 혹은 조장(鳥葬)이라 불리는 장례를 통해 죽은 자의 영혼이 새의 몸을 통해 다시 돌아온다고 하고 인도는 화장을 거친 후 영혼이 물을 통해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 몽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태반을 땅에 묻는데 사람이 죽으면 태반이 묻힌 곳에 돌아와 그것을 저고리처럼 입고 저 세상으로 간다/다시 태어난다. 기독교에서는 아예 부활을 이야기한다.

종교학자 정진홍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생명이 없는 것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듯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것의 죽음도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살아 있는 것만이 죽는 것이라면 죽음은 그 죽음 주체가 실은 살아 있던 것임을 증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죽음은 ‘삶이 도달한 마지막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진홍 2003 [만남, 죽음과의 만남], 서울: 궁리. 20쪽)



그러나 죽음이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저 세상에서의 새로운 삶으로 연결된다고 해서 그와 같은 문화적이면서 이론적인 설명이 죽음에 대한 슬픔을 경감할 수는 없다. 죽음을 마주한 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이런 문화적 어법이 설명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그저 어제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의 부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존재의 차원에서 죽음은 나쁘고 위험하고 슬프다.
셸리 케이건은 자신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2012, 서울: 엘도라도)에서 죽음이 나쁜 이유는 “죽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존재는 왜 나쁜 것인가? 삶이 선사하는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살아있으면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좋은 것들을 죽고 나면 하나도 누릴 수 없다. 삶의 모든 좋은 것들을 송두리째 앗아가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것”이라 했다. (304쪽) 물론 이 말은 살아 있으면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가정에 입각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박탈당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에게 죽음은 슬픈 일이다.
함께 살았던 늑대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마크 롤랜즈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며 인간의 삶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죽음에 묶여 있는 존재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좇는 존재이다. 우리 삶의 의미와 삶의 끝은 시간의 선을 한참 따라 내려간 후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시간의 선은 우리를 매혹시키기도 하고 공포에 떨게도 한다. 이것이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고통이다.” (마크 롤랜즈 2012 [철학자와 늑대], 서울: 추수밭. 280쪽) 결국 그의 이야기처럼 "죽음은 우리로부터 미래를 박탈"한다(271쪽).



삶을 한참 따라 내려가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알게 되는데, 그것을 따라 가기도 전에,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죽음에 이르게 된 삶에 대해 아무렇게나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죽음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숫자로 치환되는 죽음

현대 사회가 되면서 죽음이 삶의 끝이고 미래의 박탈이며 결국은 상실이라는 사실로 이야기되기보다 그저 몇 자리의 숫자로 환원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도시 스프롤 현상 탓에 많은 미국인들이 과거보다 훨씬 자주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임에 따라, 미국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4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의 연간 총기사고 사망자 수보다 1만 명이 많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죽은 미국인 수보다 10배 이상 많다. 비유하자면, 항공기가 추락해 모든 탑승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3일마다 1번씩 계속 벌어지는 셈이다. 미국 고속도로에서 매년 이만큼의 사람이 죽는다. 전 세계적으로 10세부터 25세 사이 연령대의 최대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다. (찰스 몽고메리 2014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서울: 미디어윌. 156-157쪽)

위에서 인용한 책은 도시의 과도한 확장과 교외지역 개발, 속도 위주의 도로 정책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고 교통사고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서술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사람들의 죽음은 삶의 마지막 여정으로서 애도되는 것이 아니라 자료화되기 위한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다뤄진다. 죽음이 숫자가 되는 순간부터 그 죽음은 삶과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데이터가 되어 사라진다.

죽음은 삶이 멈춘 시간인데 죽음이 죽음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숫자로 환원되어 통계자료가 되는 순간 남은 가족들의 상실이라는 감정적 경험은 탈각된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9.11의 사망자보다 많다고 해서 9.11 사건을 별 것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교통사고나 9.11이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하루아침에 1이 0이 된 것이다. 사망자의 수가 많다고 해서 어떤 죽음을 교통사고와 비교하여 그리 대단한 것 아니니 호들갑떨지 말라고, 이제 그만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은 그들의 죽음이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 여겨 공감하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존재 변화를 숫자(나아가 보상 따위의 경제적인 문제)로 바꿔치기하는 행위이다. 인권을 설명하면서 린 헌트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용어에서 따온 '상상된 공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린 헌트 2009 [인권의 발명], 파주: 돌베개. 39쪽) 죽음을 숫자로 치환하는 순간 이 공감 능력은 상실한 채 이성과 논리, 소위 말하는 '객관적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행위를 '설명'이라 믿게 된다. 숫자로 이루어진 소위 '객관적 데이터'를 들이대면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스푸너 형사를 물에서 건져낸 NS4의 헛된 설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상상된 공감의 부재

몇 달 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이런 말을 썼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xx위 등 죽음이 숫자로 치환되는 한 그 죽음과 관련된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김ㅇㅇ 전 KBS 보도국장의 발언은 그렇기 때문에 더 섬뜩하다. '안전에 부주의한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말은 2014년 4월 16일의 안타깝고 아까운 죽음들을 그저 숫자로만 치환하여 현재의 상황으로부터 자신은 초연해 있다는, 그 죽음에 대한 애도와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자기고백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의 수많은 교통사고 희생자들까지 '아무 것도 아닌 죽음'으로 만들어버렸다."

세월호 사고로 인한 죽음도, 교통사고에 의한 죽음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라. 자식을, 소중한 가족을 잃은 것은 그들과 가족들의 미래를 100% 상실한, 죽음만큼 아픈 경험이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6일 금요일

좀비와 역사

"군에서는 좀비들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지도 말고, 좀비가 되기 전에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쩌다 여기 오게 됐는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상상하려 들지 말라고 했죠. 나도 알아요.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렇죠? 이 좀비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잖아요? 이건 마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것과 같잖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상상력이 발동하는건데. 그런데 바로 그때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대충 적당히 하면서 경계를 푸는 사이에 결국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면서 왜 이런 신세가 됐을까 궁금해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리죠. ..." (맥스 브룩스 2008 [세계대전 Z], 서울: 황금가지. 287쪽)

(by Cross-stitch ninja, flickr.com)


좀비는 인간이 마주치는 순간 뇌를 박살내 처치해야만 하는 대상일 뿐이다. 처치 후 숨 돌릴 틈이 있다면 좀비가 되기 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쩌다 좀비가 되었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뇌가 박살나버린 좀비 시체 앞에 서 있는 그 순간이라면 불가능한 가정이다. 피하거나 숨거나 도망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좀비가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같은 위험에 처했을 때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빠져나갈 대안을 알려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도 바쁜 상황에서 남의 사정까지 돌볼 여유는 없다.

좀비는 그것의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과거가 삭제된 존재'이다(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2>는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현재의 좀비를 움직이게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모래인간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도 인간인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좀비들을 보여준다). 오로지 현재만 있는 존재. 누군가를 공격해서 그 살을 뜯어야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다는 현재적이고 즉시적인 존재가 바로 좀비이다. 애써 그들의 과거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성을 그와 마주한 상대에게 주고, 그들의 과거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는 것이 나의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시도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좀비이다.

뒤집어서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렇다면, 좀비가 아닌 존재와 마주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는 것은 필요하고 정당한 일이 된다.

그것이 우리가 좀비가 아닌 인간을 마주할 때 역사를 생각하는 이유이고 논리이다.

우리의 현재적 삶이, 인간의 현재 모습이 오랜 시간의 흐름과 깊이에 의해 형성된 결과이자 과정이라고 할 때 상대가 좀비가 아닌 이상 그 시간의 흐름을 돌이켜 생각할 여유 정도는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하고' 따위의 뻔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와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을 대하는 도리의 한 측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것이 좀비가 아닌 인간을 대하는 예의라는 생각도 들어서이다.

누군가에게 있었던 아픔의 시간을 그저 지난 일이라고 쉽게 잊지는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반은 농담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이십대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누가 힘들고 고생스럽지 않겠냐마는, 수업과 과제 때문에 잠 못자고, 학자금 마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알바의 현장에서 마주친 진상 손님들에게 “잔돈 나오셨습니다”라는 말도 안되는 존대법을 쓰며 정신을 탈탈 털린 후, 결과적으로는 한 줄로 표기되는 스펙을 위해 자격증과 공모전 준비로 또 다시 밤 잠 못 이루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 비할만할까. 전에 쓴 글에서 영혼을 모두 빼앗겨버린, 좀비 형상의 알바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열정노동'이라는 이름으로, 기약없는 기대를 통한 자발적 피착취를 감당하는 영혼없는 알바생”을 만든 사회는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했던 말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힘들게 살아가는 청춘들, 21세기 한국사회의 이십대들을 다룬 또 한 권의 책이 등장했다.


오찬호 2013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고양: 개마고원




사실 나도 궁금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들이 왜 그렇게 인기인지. ‘세상이 힘들기는 하지만 조금만 참고 견디면 행복이 올거야’라는 말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세상이 힘든데, 세상이 이상하게 나를 쪼아대고, 경쟁이라는 이름 뒤에서 신자유주의가 맑은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서서히/급속히 번져나가는데, 견뎌내고 참아내라니. 모든 사람에게 차력사가 되라는 것인가. 아니면 위기와 위험을 피하는 방식을 타조에게 배우라는 것이거나.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 역시 자기계발서의 공허함이다. (아래는, 책에 나온 내용들 중 몇 곳을 옮겨 놓은 것이다. 빌려 읽은 책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참고하기 위해 옮겨 온 것이 많아 길다. 이리도 긴 인용들을 모니터로 보는 것이 피곤한 분들은 책을 구해서 읽어보시라. 매우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래에서 괄호 안 숫자는 쪽수. 약간 어색한 표현이나 비문으로 보이는 곳들은 한두 군데 수정함) 책을 옮겨온 것이 대부분인데, 이에 대한 주석 혹은 설명은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이 언제가 되든.


  • 각기 접근방식은 달라도 자기계발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성과'라는 결과물이다. 즉, 자기계발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동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십대는 과연 이런 자기계발이 추구하는 바를 달성하고 있기에 거기 목매는 걸까? 그러나 아무리 봐도 지금의 자기계발 현상에는 '이렇게 하라!'는 주문만 있지 그로 인해 '달라진 결과'가 없다. 그렇게도 자기계발이 현상황을 극복할 유일한 진리라면, 그래서 한 개인이 '예스'라고 응답했다면 그로 인해 조직에 적응이 되든지, 자아가 구체적으로 치료되든지, 아니면 평생에 걸쳐 '즐길' 어떤 기술이라도 연마되든지 해야 할텐데, 지금 도대체 어떤 결과가 이십대들에게 있단 말인가. 오히려 지금의 청년들은 그런 결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걸 특성으로 갖고 있지 않은가. (32)
  • 자아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기통제의 '자기계발'은 이십대에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잘 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으로 버틴다. "고생 좀 하자! 그러면 좋은 일 있겠지?"라며 자기희생을 합리화한다. 그러다 지치면 "조금 쉬다가 다시 달리자!"라는 누군가의 위로에 눈물 흘리며 다시 원래의 그 '길'에 올라선다. (59)
  • 시중에 출간된 자기계발서들을 얼핏 넘겨만 보더라도, 이 책들이 자신의 고통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임을 강요하고 있단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내 고통이 세상 누구나 겪는 성장통 정도로 간주되는 판에, 남의 고통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길까? 이렇게 자신의 고통도 늘 스스로 참아야 하는 것으로 강요되는데, 남의 고통까지 왜 신경을 써줘야 한단 말인가? '이런 철학'을 개인이 가지게 되면 그는 특정한 시각을 갖게 된다. 힘들어 죽겠다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에게 "어쨌든 자기문제지, 그것도 못 받아들여?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라고 반응하게 된다.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공감대 형성은 당연히 어려워진다. (89-90)
  • '남들보다 성공하라!'는 자기계발의 시대에, 노력한 만큼의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해도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누르는 것은 가능하다. 다른 이보다 '위'에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이들은 서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개인의 '신분 상승'이 실현되기 힘든 세상에서, 적어도 자기 노력의 결과가 평가절하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남의 추락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남의 결점은 작더라도 부풀려 보게 된다. 견고한 서열이 균열을 보이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48-149)


그리고 대학입시만이 공부의 대표가 된, 입시위주의 교육도 크게 한 몫 한다. 수능은 자신이 투자한 만큼 돌려받는, 가장 ‘객관적 지표’라고 믿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 학생들을 대상으로 4년간 입시 경험에 대해서 조사해보니 무려 78%가 수능배치표와 자신의 관계를 '비합리적인 강요'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수능성적에 맞는 학교를 '강제로' 골라주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십대 대학생들의 일상은 이 수능배치표에 너무도 강고히 얽매여 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로 암송되는 서울권 20개 대학의 배치표 순위가 이들의 삶을 지배한다. 그 배치표에서의 위치야말로 자신의 현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지표이다. 과거의 기억이 어떠했든, 현재 이들이 자기계발 시대를 살게 된 이상 그 기억은 이렇게 재구성된다. 수능배치표가 부여한 점수차는 타인과 자신을 구분, 구별, 차별해 주는 객관적인 숫자가 된다. 그것은 '별 것 아닌 숫자'가 아니라, 한 인간이 '시간을 얼마나 성실하게 사용했는가'를 증명하는 지표이다. 자신의 경쟁력을 드러내고 강조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숫자인 것이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되는 상황이다. 노력과 시간관리 등을 강조하는 '자기계발 논리'는 이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에서 수능점수의 '가치'를 당당히 증명해 준다. (144-145)
본문에 인용된 한 학생의 에세이는 수능이 어떤 성격인지 잘 보여준다.


  • 나는 경제학과를 2005년에 입학했다. 당시 나는 연세대 인문대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지원했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나의 선택이었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점수에 맞추어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개의 학과(경제학과 인문학)을 지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이렇게 선택하게끔 했을까? 대학을 6년째 다니면서 이러한 고민은 처음 해본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처럼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지원했을 것이다. 대학배치표는 수험생들을 위해 일종의 사회적인 합의에 따라 대학교와 학과들의 순위를 책정해 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학서열화는 참으로 편리하고 유용한 정보이지만 학과가 평생의 직업과 더 나아가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변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참으로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점수에 맞추어 서강대 경제학과를 지원했다. 왜냐하면 수능점수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수능 점수는 475점 어치의 '상품권'과 같았다. 상품권은 그 범위 안에서 물건을 살 수 있지만 거스름돈은 주지 않는다. 우리가 10만원 권 상품권을 가지고 쇼핑을 할 때, 어떻게든 10만 원을 다 쓰려고 노력하듯, 나 역시 나의 475점을 어떻게든 남김없이 다 쓰려고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수능점수가 재수까지 해서 힘들게 획득한 상품권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내가 살 수 있는 최대의 가격표가 붙어 있는 서강대 경제학과와 연세대 인문학과에 사용했다. 손해 보기 싫은 그 심리, 남들이 7만 원짜리 상품권으로 살 물건과 내가 10만 원짜리 상품권으로 살 물건이 같으면 손해라는 그 심리가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다.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물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400점짜리 상품권으로 살 수 있는 다른 대학의 '영화학과'를 무척이나 가고 싶었다. (142-143)


그리고 수능은 단순히 성적에 따른 위계만 만들지 않는다.


  • 한국 대학들의 서열은 단지 수능점수만으로 구별되는 게 아니다. 경제적 지표로도 나뉘어진다. 각 대학에서 공시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학자금 대출현황을 확인해 보면 서울지역 주요 23개 대학의 학자금대출자 평균비율이 재학생 대비 14.5%인데, 서울대와 연세대는 불과 5%대다. 하위 6개 대학은 상위 4개 대학보다 학자금대출자 비율이 11%가 더 높았다. (199)


저자는, 현재의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는 말아야 하며 개인들의 힘이 모여 작은 변화라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그것이 희망이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 우리의 이십대들은 여전히 '긍정'과 '희망'만을 강조하는 세상 한 가운데를 살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300만 권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200만 권이 넘게 팔렸다. 대학가에서는 유명 멘토들의 초청 특강을 알리는 현수막을 곳곳에서 보게 되는데, 그 내용들은 한마디로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이다. 이십대 청춘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라고 코너에 몰아놓고는 힘든 상황을 이겨낸 특별한 경우를 강조하는 건 이 사회가 실제로 공정하지 않은데도 이를 문제 삼지 말라는 격에 다름 아니다. 물론 긍정과 희망의 강조 이면에는 거꾸로 깊은 좌절에서 오는 패배의식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세상이 뭐 바뀌겠어? 세상이 원래 다 그런 거지, 사회는 어쩔 수 없는 거라니까! 바뀌는 게 없는데 환경 탓이나 하고 있다간 나만 손해잖아! 그 사이 남들이 나를 앞지른다고!' 맞다.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에 맞춰 나를 바꾸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이득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인류는 세상을 바꾸면서 진보해왔다는 점을. (190-191) … 인류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인종차별을 부당하게 여겨 철폐하고... 이런 변화는 기존의 사회가 문제 많다는 걸 직시한 개인들의 노력에서 시작된 일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 또 문제라면 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를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원래의 것이 옳은 듯 착각할 뿐이다. 그러나 착각이 깨지면 그 사회는 절로 좋은 쪽으로 구성원들을 이동시킨다. 사회는 그렇게 '개인들'로 인해 변하는 것이다. (192-193)
  • 비록 평범한 목표를 가지고 살더라도 인간다움이 지켜지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꿈꾼다. "닥치고 성공!"이라는 논리에 근거하여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오류만이라도 줄이려 노력한다면, 굳이 '탈출'을 권할 필요도 없는 건강한 사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힐링'이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없는 세상이 등장할 때, '아픈 청춘'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이십대를 향한 어쭙잖은 '감성팔이 위로'의 말은 당장 거둬들여야 한다. 진심으로 이십대를 사랑한다면 말이다. (234)

솔직히 말해 (그것에 대한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어쩌다보니 사회에서 소위 기득권층이라 이야기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주인공들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그들이 처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현실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도 여전히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라"라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만드는 데 함께 하자"라고는 이야기하고 싶다(그 일에 나도 좀 끼워달라는 말이다). 희망은 누군가 선심쓰듯 던져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소외, 알바, 좀비

"소외는 언제나 공장 노동자들의 착취를 이해하기에는 취약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여기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노동--정동적 노동뿐만 아니라 지식 생산과 상징적 생산--으로 간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영역에서, 소외는 정말이지 착취를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개념적 열쇠를 제공해준다."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2008 [다중], 서울: 세종서적. 148쪽) 

요즘 한국사회에서 자주 쓰는 표현 중 "영혼없는 ~"이라는 말은 소외와 배제의 기호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노동현장에서 노동의 소외를 이보다 잘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영혼 없는 웃음.
영혼 없는 반응.
영혼없는 '고객님 얼마나 불편하셨습니까.' 등

자신의 감정 서비스와 노동의 결과물로부터 완벽하게 소외된 현대사회의 알바생은 임성한 작가의 전매특허인 '유체이탈'을 매일 반복하고 경험한다. 네그리와 하트가 소외라는 용어가 여전히 유용하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필시 한국의 노동현장과 청(소)년 알바 현장에 다녀갔던 것이 틀림없다. 

'열정노동'이라는 이름으로, 기약없는 기대를 통한 자발적 피착취를 감당하는 영혼없는 알바생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노동의 결과로부터,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영혼으로부터까지 소외되어 카운터 뒤에 서 있는다. 

이것이 현대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좀비의 형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좀비의 가장 큰 특징, 즉 영혼은 사라지고 육체만 남은 존재라는 점을 기억하자. 최근 개봉했던 <웜 바디스>는 그런 점에서 좀비의 새로운 변형이다.)

이들의 좀비 같은 형상에 불쾌해할 것이 아니라 누가 이들을 좀비로 내몰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래저래 안녕하기 어려운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2013년 8월 30일 금요일

설국열차

자리에 앉아 안전장치를 내려 몸에 밀착시키고도 여러 차례 흔들어본다. 그래도 불안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어렵다. 끼이익~ 하는 날카로운 금속들의 소리와 함께 출발한 롤러코스터에 앉아 몸이 서서히 뒤로 기울어지며 올라가는 그 순간은 두려움과 공포의 순간이다.

공포는 불확실함, 미지의 상태가 만들어낸다. 앞에 어떤 경로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등 뒤에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 불확실할 때, 침대 아래에 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차마 볼 수 없는 상태, 문 뒤에 무엇/누구인지가 없다고 확신할 수 없을 때,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와 마주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공포'라는 단어이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그 무엇과의 조우가 현재의 추구가 만들어내는 고통과 공포를 상쇄할 수준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길은 공포를 이겨내고 미지에 맞설 용기를 필요로 한다.  

커티스가 그 용기를 가진 인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그는 꼬리칸을, 보다 정확하게는 그곳에서 있었던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한 기억과, 자신 스스로가 (어떤 맛을 알아버린) 두려운 존재라는 사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향한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그랬고 많은 영웅물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이 정말 자신인지 혼란스러워하던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로 그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두의 운명'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 때문이었다. (윌포드를 만나기 전 그가 남궁에게 자신의 긴 이야기를 하는 시퀀스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회상씬으로 보여줘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던데, 개인적으로는 문앞에서 과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기억/과거를 극화시키지 않고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모습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 적절했다고 본다.) 엔진룸(엔진은 그것 자체로 질서와 제어의 구체적 사물이면서 동시에 은유이다)에 혼자 서 있던 그 순간은 윌포드(그에게 테크놀로지는 인간 구원의 수단이다. 실패한,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수단이기는 하지만)의 말처럼, 실제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자신의 상황, 꼬리칸부터 엔진까지 달려오는 동안 마주했던 많은 죽음들이 어쩌면 앞과 뒤(사실 이것은 위와 아래의 기만적인 수평적 전환이다)의 공모였을 뿐이고 자신은 그저 군중 속 일원이었을 뿐임을 억울하게 인정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그제서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미래의 공모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그는 결과적으로 '모두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시스템 전체의 부품처럼 살아가야 하는 모습을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희화된 방식으로 보여줬다면 <설국열차>는 그 현실이 어쩔 수 없는 질서이고 그렇기 때문에 타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고통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엔진의 기본 속성인 질서와 제어, 질서와 균형이라는 명목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의 목적이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희생양을 내세우는 정당화로밖에는 들리지 않는 모순적 상태를 기만적 수평상태의 위계화된 수직사회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꼬리칸에서 엔진에 이르는 그 수평선/수직선의 이동은 곧 위계의 시간성을 경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꼬리칸에는 창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스스로 인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시간마저 이 영화에서는 한정된 재화이다.) 

요나는 기차를 빠져나왔지만 영화를 본 우리들은 여전히 기차에 올라 타 있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기억과 기계와 인간: 오영진의 <어덜트 파크>

코엑스에 갈 일이 있어 조금 일찍 가 서울 국제도서전에 들렀다. 가지고 있던 어떤 신용카드 덕에 공짜 입장권을 받아 3,000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이런 공짜 입장은 행사장 안에서 경험한 엄청난 지름신의 강림을 조금이라도 위안하려는 주최측의 배려일 수도 있다. ㅠㅠ)



얼마 전 우연히 책 소개를 보고 다음 학기 <디지털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에 관련될 수 있겠다 싶어 제목을 저장해 놓은 책이 있었다.

오영진의 <어덜트 파크>(2013, 창비).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을 했고, 평소 만화를 잘 안 보는 사람이지만 이 정도의 분량이라면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도서전에서 창비 부스에 들렀다가 이 책을 발견. 보려고 했던 책인데 심지어 싸게 살 수 있다니!!

며칠 전 엄기호 선생님은 트위터에서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엄쌤의 설명 그대로다. 이 책은 관계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장기매매라는, 무엇이든 팔고 살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비열한 얼굴도 그대로 보여주며 한국사회의 직장에서, 술집에서, 휴가를 위해 떠난 관광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와 함께 내가 (다음 학기의 수업과 관련하여) 주목했던 것은 기억의 문제이다.
기억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이 해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것이 항상 쉬운 것이 아니어서 오래 전부터 인간들은 기억을 위한 보조장치를 활용해왔다. 동물의 뼈나 돌판을 지나 종이를 거쳐 '디지털 시대'인 지금은 USB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이 인간의 몸 외부에 위치하며 그 역할을 담당한다.
몸으로부터 벗어나 외재하는 기억들. 그 기억을 담당하는 기계들. 그 기계/기억과 대면하는 인간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내가 예전에 엄청나게 좋아했던, VHS 비디오 테이프로 봤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당신들(인간들)의 DNA 또한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이란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절점과 같은 것이다.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을 가지고 사람은 오직 기억으로 인해 개인일 수 있다. 설령 기억이 환상과 동의어라고 해도 인간은 기억에 의해 살아간다. 컴퓨터의 보급이 기억의 외부화를 가능하게 했을 때 당신들은 그 의미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인형사의 말)

오영진의 <어덜트 파크>는 <공각기동대>가 제기한 여러 주제 중 하나를 이어 받는다. 자본주의에서의 사람의 관계와 함께, 기억의 위치와, 기억의 장소인 인간/기계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가 될 것 같다. 그냥 읽어보시라.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만년필과 잉크

얼마전부터 만년필에 꽂혀 버렸다.

계기는 장인어른이 주신 만년필. 몇 해 전 잉크와 함께 주신 것인데 오래 묵혀 놓았다가 올해 초에 꺼내 쓰기 시작했다. 손에 힘을 주지 않아도 펜 자체의 무게만으로도 슬슬 부드럽게 잘 써지는 만년필에 감동하게 되었다.

컴퓨터와 핸드폰 덕에 손으로 글을 쓸 일은 거의 없는데 굳이 만년필을 쓰기 위해 손으로 쓰는 일을 만들기도 했다. 일부러 수첩과 노트를 찾았고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즈음, 가지고 다니던 노트북컴퓨터가 이제 쉬고 싶다며 태업을 하기 시작한 것도 손으로 쓰는 일을 늘리는 데 자연스럽게 일조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몇 가지 이유로 조금은 캐주얼한 분위기의 만년필이 필요했던 터라 다른 만년필을 하나 더 장만했다. 역시 만족스럽다. 만년필 짱!! (음.... 김정운 선생의 책을 읽어봐야겠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만년필 두 자루
오늘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만년필의 이야기는 아니다. 며칠 전 한 학생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말했던, 만년필과 잉크의 비유. 그것을 기록해 놓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는 것과 비슷하다. 비어있던 컨버터에 잉크를 채우는 과정.
잉크가 차올라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 컨버터의 위쪽을 돌리면 잉크가 점점 채워진다. 그렇게 채워진 잉크는 오랜 시간 사용하면서 글과 기록이 된다. (잉크의 소비는 곧 기록/글의 생산이다.) 

적절한 시점이 되어 잉크를 채우고 그것을 이용하여 글을 쓰는 만년필은,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한 아주 단순한 비유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시점에 열심히 채우고 그것을 풀어내어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무언가를 배우고 나의 말로 옮겨보는 과정이다.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비유라는 사실, 인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특히 경쟁체제와 입시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몰아가는 한국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는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색의 잉크를 채우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 잉크를 채웠다는 사실과 그렇게 채우는 행위에 만족할 뿐. 글을 다 쓴 후에는 잉크를 이용해 써 낸 글을 보려 하지 않고 원래 손에 들고 있었던, 이제는 잉크 컨버터가 비어버린 만년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난 잉크를 꽉 채웠었어"라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시선은 종이에 남겨진 글이 아니라 만년필에만 여전히 묶여 있다.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쓰는/써야하는 유일한 글은 '대학입학'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것을 쓰려는 순간 만년필은 사라진다/빼앗긴다.

잉크를 채우는 목적은 글을 쓰기 위함이지 잉크 채우기 그 자체가 아니다. 만년필을 사용하든 볼펜을 사용하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용해 쓴 결과물이다. 필체도 다를 수 있고 쓴 내용도 다를 수 있는, 천차만별의 글. 잉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알아보기 힘든 필기체의 문장이 될 수도 있다. 애초에 잉크를 각기 다른 색으로 채웠다면 종이에 남겨진 기록의 색도 아예 다를 것이다. 만년필을 가지고 있고 잉크를 채웠다는 사실에만 뿌듯해 하며 만년필만 바라보지 말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시간이 흘러 배운 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보고 다시 생각해보고 어떤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나눠주는 행위가 아닐까.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하며 잉크를 채우는 기대에 찬 기쁨은 펜촉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잉크들의 흔적을 위한 것이지 잉크를 채웠다 비우는 행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잉크를 조금씩 채워보고 그것으로 내가 무엇을 쓰는지, 무엇을 그리는지 생각해보는 것.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나눠서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는 일. 그것이 만년필의 궁극의 지향이다.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자판을 두드려 입력하는 것이고, 과도하게 계몽적이고 지나치게 '선생이라는 직업이 가져온 직업병에 가까운 글'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 글을 남기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과 나눠서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 그것이 만년필 예찬으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2012년 10월 3일 수요일

<광해, 왕이 된 남자>

닮은 얼굴의 두 남자가 있다.

한 명은, 자신의 자리와 외부의 위협 때문에 불안한 임금, 광해.
그리고 또 한 명은 탈을 쓰고 임금을 우스개거리로 삼아 먹고 살던 광대 하선.

하선은 탈을 써야만 임금의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궁에 들어간 이후 그는 비로소 탈을 벗고 맨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지금까지 그가 본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도 탈을 벗게 된 궁에서부터이다.

탈이란 물건은, 써보면 알겠지만 뚫려 있는 구멍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 보이는 물건이다. 궁에 들어오기 전까지 하선의 생활은 그저 보이는 대로 살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만 보던 세상이었다. 탈, 혹은 가면이라는 물건은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지만 어쩌면 세상은 그냥 돌아가는 대로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이 쓴 가면 때문에 좁게, 다르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선은 궁이라는 배경 속에서 사회적인 역할극의 한 역할을 맡는 것으로 자신의 새로운 생활을 본의아니게 시작하게 되었다. 궁에 들어가 자신의 맨얼굴로 임금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그의 모습은 "임금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이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임금의 명이 법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그것 또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위험에 빠진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인지 그도 잘 안다.

맨얼굴로 마주한 세상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서로 죽고 죽이며 살지 않는 것. 그가 현명하게 결정한 것처럼 자신의 꿈은 자신이 꾸는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맨얼굴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두려운 확신. 그는 이제 더 이상 탈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선은 자신의 맨얼굴로 떠나고 도승지 허균은 멀어져가는 배가 보이는 포구에서 그에게 진심어린 예를 갖춘다. 인간의 얼굴을 마주할 때 보일 수 있는, 도승지가 '천한 것'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를 갖추고 그를 보내는 것이다.

탈을 쓰고 마주하던 세상과, 맨얼굴로 보는 세상이 본디 다른 세상은 아니겠지만 경험적으로는 다른 세상이다. 그 탈을 벗을 것인지 그 탈 뒤에서 세상이 무엇인가는 보지 않고 살아갈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하선에게는 목숨까지 걸어야 할 정도의 선택이기는 했지만.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비정상적 다수의 힘을 경계함

어제, 최근 여수 엑스포를 다녀온 친구과 이야기를 나누다 '등산복 차림의 중년 여행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했다. 나도 여수 엑스포 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화면에서 '등산복 차림의 여행객'을 꽤 많이 보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관광지에서 마주칠 수 있는 화려한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 같은 지역 모임이거나, 동창들이거나 혹은 어떤 다른 집단이건간에 그들을 마주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은 한 순간에 식당의 방 전체를, 관광지의 매표소를, 고속도로의 휴게소를 '장악한다.'

집에서 가깝고 길이 험하지 않다는 이유로 요즘 자주 가는 북한산 둘레길에서도 고급장비와 복장을 갖추고 팀을 이룬 '여행단'을 쉽게 본다. IMF 이후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도 커졌다고 하는데, 이제는 등산이나 캠핑뿐 아니라 그저 집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아웃 도어" 상황에서 화려한 등산복들은 일상복이 되었다. 등산복으로 무장한 중장년의 모습은 여행지에서, 일상에서 다수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의 일상에서 '정형화된(stereo-typed)' 이미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등산복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기능적으로 괜찮은 옷이어서 일상에서의 활용도가 높을뿐 아니라, 그저그런 일상에서 등산복으로 뽐내보고 주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 쯤 입어보고 싶은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

오늘 아침 신문을 읽다가 칼럼을 하나 보았다. "'스카이' 국회"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서울대 동창회보 5월호에 실린 '제19대 국회의원에 동문 132명 당선'이라는 기사에서 출발한 글이다. 전체 의원 300명 중 44%인 132명이 특정 학교 출신인 것이다. 서울대, 연대, 고대 동문으로 19대 국회에 당선된 사람이 최대 270명(90%), 중복되는 사람들을 한 대학 출신으로만 쳐도 205명(68.3%)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대 동창회보에서 캡쳐한 사진)
한겨레 칼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무척 비정상적이다. 어떤 사회집단에 특정 학교 출신들이 60%이상 포진하고 있고, 달리 보면 90% 정도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의 연망이든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무섭기까지 하다.

예전에 다른 상황에서 자주 예를 들었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까지 서울대에서 활동했던 성소수자 모임 "마음 001"이 생각난다. (현재는 큐이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마음' 뒤의 숫자는 "100명 중 성소수자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수"라는 의미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006, 008 정도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마음 050' 같은 상황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마음 060' 정도가 될 수 있었다면? 001의 시절과는 아주 다른 양상으로 '소수자'라는 표현은 떼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다수가 이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들을 '비정상'에 몰아 넣었던 이상한 논리의 시대에 살았던(지금도 살고 있는) 상황을 인지한다면, 한 집단 안에 특정 이해관계의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충분히 두렵다. 자신들의 얽히고 섥힌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배제하거나 소외시켜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믿고 살겠지.

다수가 힘을 모아 소수를 자신들의 경계 안으로 포섭하거나 배척하는 일은 중국의 한족과 소수민족의 역사적 관계에서도 충분히 목격한 바 있다. 다수가 힘을 모아 소수를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 것이 이상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요인 때문에 한 집단에 이런 과도한 다수가 포진하는 사실도 충분히 비정상적이다.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게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불편한 진실)

숫자가 많다고 그 내부의 다양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지는 않는다. 특정 학교 출신이라고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은 분명 아닐테니. 하지만 숫자가 힘이 되고 폭압이 되고 권력이 되는 순간이 없을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산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현란한 색의 등산복 무리는 수가 많지만,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그냥 점점 정형화된 이미지가 강해질 뿐. 하지만 국회라는 '힘의 조직' 안에 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힘', 한국사회에서 학벌이 가진 위력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 학벌로 똘똘 뭉친 '힘있는 집단'이 만들어지는 것은 위협적이다.

네 개의 언론사가 거의 100일 이상, 어떤 경우는 1년 가까이 파업 중인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사회(<나가수> 신정수 PD도 1인 시위에 나섰다는 기사들 1, 2). 위장전입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는 사회. 여러 가지로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상황에 비정상적인 상황이 하나 더해진 것쯤으로 전반적인 상황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아,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비정상성의 상황이 너무 크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문제이니 새삼스럽고 유별나게 굴지 말라고 하기에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져 버렸다.

2012년 2월 2일 목요일

공정과 믿음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민주통합당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의 이야기를 보았다. 공정함을 강조하면서, 예전에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사용하던 비유가 있다고 했다. "케이크를 두 사람이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건가. 한 사람이 먼저 칼로 자르도록 한 뒤, 나머지 한 사람이 둘 중에서 선택하게 한다." 그가 보는 공정은, 참으로 공정하다.

문득, 사람 사는 세상에 공정함은 참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공정함은 그저 원칙과 계약이 강조되는 업무적 관계 속에서나 적합할 것 같은 차가움이 묻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크를 둘로 나누지 않고 함께 마주 앉아 퍼먹으면서 내가 덜 먹든 상대가 많이 먹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인간 관계일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좀 덜 먹고 더 먹고 상관하지 않고 큰 불만도 갖지 않는 모습. 이번엔 네가 케이크를 많이 먹었으니 다음에는 크림 올린 맛있는 커피 한 잔 사라고 웃으며 퉁칠 수 있는 관계. 꼭 커피를 사지 않아도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생각하는 편안하고 덜 계산적인 관계. 그 관계들로 이루어진 사회.

이상적이고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런 사회를 꿈꾸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라 믿는다. 쇠고랑 차거나 경찰 충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공정보다 더 따뜻한 믿음의 문제가 아닐까.


2011년 6월 7일 화요일

‘궁극의 무엇’을 향해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그 때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내가 속한 동아리는 ‘고뇌하는 마음으로 노래를’이라는, 지금 보면 너무 직설적이어서 조금은 민망한 구호를 앞세운 노래패였다. 그때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막 출범하던 시기였다. 그 출범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를 고뇌하도록 했지만 솔직히 1학년인 나는 선배들만큼의 고뇌의 깊이를 갖지는 못했고 고뇌는 여전히 그들의 몫이었다. 선배들이 전교조 지원 공연을 기획하고 전교조 노래패와 함께 무대에 서기로 결정한 후 연습에 돌입하고 공연 당일까지, 그날의 무대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공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1학년인 나에게는 그저 약간은 흐린 5월의 어느 하루일 뿐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공연을 앞두고 최종 점검을 시작할 때 쯤이었다. 공연을 함께 할 해직(!) 선생님들이 도착하여 공연장에 들어오시는 순간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심지어 두 분이나.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과, 수업 시간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도레미송을 가르쳐 주던 수학선생님이 그 자리에 오신 것이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얼굴과 마음은 6년 전 그 시간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분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날 저녁 공연장의 기억으로 멈춰 있다.
우리는 함께 무대에 올랐고 마지막 곡을 부를 때 수학선생님은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 공연후 관객들에게 전한 인사말: “제자와 이런 자리에 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종교적’이라는 종교학자 멀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적 인간은 매일, 혹은 매 순간 자신의 자리에서 불가능을 살아내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경건하게 만든다. 그렇게 인간이 ‘종교적’인 경건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경건하게 ‘궁극의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쓰촨(四川)을 출발해 1년 가까이 오체투지로 2100km의 여정을 거쳐 라싸를 향해 가는 순례자들만이 ‘궁극의 무엇’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선생님들과 같은 무대에서 불렀던 노래는, 하늘 아래 미움을 받은 별 같고 혹은 바다 깊이 상처입은 물고기 같더라도 언젠가는 희망의 그곳에 도착할 것이라는 가사의 곡이었다. 우리는 그 평등의 땅을 향한 여정에 함께 서 있었고 여정의 끝은 희망일 것이라고, 그날만큼은 그것이 ‘궁극의 무엇’이라고 믿었다. 그날의 ‘궁극의 무엇’은 개인이 잘 되고 경쟁에서 승리하여 혼자 우뚝 서기 위한 달리기의 끝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함께 걸어가는 과정에 대한 신뢰였다.

그 ‘궁극의 무엇’을 향해 가는 길에서 다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5월 어느 흐린 날의 그때처럼.

(이 글은 2011년 6월 7일 교내 매체에 실린 글입니다)

2010년 12월 4일 토요일

꿈의 진화?

어릴 때는 분명, 아주 허황된 것이라 하더라도 꿈이 있었다. 어른들이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라고 물으면 별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이거나 과학자이거나 우주비행사이거나 뭔가 그 당시에는 그저 높아 보이는무엇을 아무렇게나 이야기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 단어 그대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이룰 수는 없지만, 아니 오히려 이룰 수 없기에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꿈이었다. 그러다가 중학생 정도 되면 조금은 구체적인 모습이 된다. 화가라거나 작가라거나(이 시기 정도되면 대통령은 제외된다.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이미 깨닫게 되는 거지), 선생이라거나, 아니면 비디오가게 주인과 같이 나름의 독특한 자기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 직종으로서의 희망이 등장한다

©Simon Hua, from flickr.com

고등학생 시절.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 때의 꿈은 오로지 대학이 된다. 대학에 들어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꾸는 꿈은 대학입학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 나보다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더 간절히 원하고 희망하고 그곳에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채근하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어릴 때의 다른 꿈들을 대체한다. 그때까지만 참고, 다른 생각은 모두 유예시킨 채 지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 꿈을 이루어 대학생이 되고 몇 년이 지나면 다른 꿈을 갖게 된다. 새롭게 등장한 꿈은 그저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고 부대끼며 출근하고 팍삭 익어버린 파김치 모양으로 퇴근하더라도 정식으로 월급을 받고 4대보험이 해결되는 직장인이 되는 것, 그것이 소망이 된다. 그것도 간절한 소망이.  

언제부터 꿈이 이런 식으로 진화했을까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4대보험이 해결되는 정규직으로 살게 되고 학교라는 현실에서 만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의 꿈의 진화 과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진보와 발전의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도, 아프지만 느끼게 되었다. (진화라는 용어는 애당초 진보와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Llima, from flickr.com

이는 결국 사회의 문제이고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사회의 문제임은 분명하지만 (최소한 현재는) 그 문제에 대해 사회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도 하고, 더욱이 그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쉽게 입을 열기 힘들다. 그렇다고 너희들이 지금보다 어릴 때 가졌던 꿈을 생각해봐. 그리고 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칠 수도 없다. 그럴 수 없는 노릇이잖아. 물리적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당사자들도.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시간도 많이 필요할 것이다.
현실이 만들어내는 모순을 까발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거야, 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비상구는 없어라고도 쓰고 싶지는 않다. 다만 비상구의 방향이 '순응'을 향해 나있는 것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db photographs, from flickr.com


([위풍당당 개청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이십대 전반전] 등을 읽다가 쓴 것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2010년 9월 2일 목요일

경계도시2

(2010년 3월 30일 이전에 사용하던 블로그에 있던 것을 옮겨 왔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곳에 저장합니다.)


<경계도시2>를 보았습니다. 
맡고 있는 수업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함께 보기로 한 것인데, 사실은 제가 좀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무엇이길래.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길래. 

사실 '송두율 사건'이라 불리던 그 일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영화가 다루는 바로 그 일이 있던 그때 중국에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에서 조사를 하던 때라 한국에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 끄고' 있었더랬죠.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건이 일어났다 빠르게 잊혀가는 데 저 역시 한몫한 꼴이 되었습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영화는 저 같은 사람에게 큰 소리로 묻고 있습니다. 나의 삶이 아니라고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느냐고.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이 과연 있는 것이냐고. 


송두율 교수는 진정한 '경계인'으로 살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꿈과 희망과 결단이 지금은 좌절되어 절망의 끝으로 빠져 버린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송두율 교수의 경계성이 아니라, 사상과 생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의지를 용납하지 않으며, 이미 정해져 있는 어느 한 극단에 반드시 속해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고집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는 답답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에 돌아온 송교수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던 감독의 애초 의도가 관철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송교수는, 자신의 뜻을 몰라준다고 누군가에게 투정을 하거나 탓하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히려 투정부리고 남탓하는 것은 진보진영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대의명분과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그저 남의 일이라고 영악하게 머리만 굴려 말하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평생을 그의 옆에서 한결같은 믿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모님의 지지 역시 큰 몫을 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었고 끝없이 부유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선택은 어쩌면 그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답답한 우리의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서울의 어두운 밤 모습을 공중에서 천천히 선회하는 시선으로 보여준 영화의 첫 시퀀스는 송 교수의 부유하는 영혼과 닮아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선회할 뿐 내려앉지 못하는 경계인. 그리고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 서울이라는, 삶을 통채로 건 누군가의 선택조차 얄팍한 이념과 대의명분으로 마음대로 재단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한 천박한 욕망이 어두움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도시.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역시 그만큼 힘겨울 수밖에 없나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