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내가 속한 동아리는 ‘고뇌하는 마음으로 노래를’이라는, 지금 보면 너무 직설적이어서 조금은 민망한 구호를 앞세운 노래패였다. 그때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막 출범하던 시기였다. 그 출범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를 고뇌하도록 했지만 솔직히 1학년인 나는 선배들만큼의 고뇌의 깊이를 갖지는 못했고 고뇌는 여전히 그들의 몫이었다. 선배들이 전교조 지원 공연을 기획하고 전교조 노래패와 함께 무대에 서기로 결정한 후 연습에 돌입하고 공연 당일까지, 그날의 무대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공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1학년인 나에게는 그저 약간은 흐린 5월의 어느 하루일 뿐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공연을 앞두고 최종 점검을 시작할 때 쯤이었다. 공연을 함께 할 해직(!) 선생님들이 도착하여 공연장에 들어오시는 순간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심지어 두 분이나.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과, 수업 시간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도레미송을 가르쳐 주던 수학선생님이 그 자리에 오신 것이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얼굴과 마음은 6년 전 그 시간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분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날 저녁 공연장의 기억으로 멈춰 있다.
우리는 함께 무대에 올랐고 마지막 곡을 부를 때 수학선생님은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 공연후 관객들에게 전한 인사말: “제자와 이런 자리에 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종교적’이라는 종교학자 멀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적 인간은 매일, 혹은 매 순간 자신의 자리에서 불가능을 살아내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경건하게 만든다. 그렇게 인간이 ‘종교적’인 경건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경건하게 ‘궁극의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쓰촨(四川)을 출발해 1년 가까이 오체투지로 2100km의 여정을 거쳐 라싸를 향해 가는 순례자들만이 ‘궁극의 무엇’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선생님들과 같은 무대에서 불렀던 노래는, 하늘 아래 미움을 받은 별 같고 혹은 바다 깊이 상처입은 물고기 같더라도 언젠가는 희망의 그곳에 도착할 것이라는 가사의 곡이었다. 우리는 그 평등의 땅을 향한 여정에 함께 서 있었고 여정의 끝은 희망일 것이라고, 그날만큼은 그것이 ‘궁극의 무엇’이라고 믿었다. 그날의 ‘궁극의 무엇’은 개인이 잘 되고 경쟁에서 승리하여 혼자 우뚝 서기 위한 달리기의 끝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함께 걸어가는 과정에 대한 신뢰였다.
그 ‘궁극의 무엇’을 향해 가는 길에서 다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5월 어느 흐린 날의 그때처럼.
(이 글은 2011년 6월 7일 교내 매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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