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일 토요일

'하드모드'의 상하이

넘어져버린 레미콘

게임에 비유하자면 중국에서 사는 것은 하드 모드를 플레이하는 것과 같다.”
  
은행의 투자부에서 근무하는 상하이 청년 J는 생활을 위해 신경쓸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2012 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는 현재 신혼집 인테리어 때문에 바쁘게 지내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을 하고 그들과 벽지, 장판 등을 상의하고 결정하면 업체가 알아서 일을 추진하는 반면 J는 벽지, 장판, 페인트 등 인테리어에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미래의 신부와 함께 결정하고 자재상가에 직접 가 사오고 시공하는 인부를 따로 불러 직접 감독하며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5월부터 시작했으니 꼬박 3개월 이상 매달린 셈이다. 한 푼이라도 더 남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중국 같은 사회에서는 인테리어 업체도 믿을 수 없단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손수 운반하지 않는 이상 원래의 계획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퇴근 후에 신혼집으로 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결하고 가구나 설비 주문을 하면 연차휴가를 내고 물건을 받아 확인했다. 주말마다 신혼집 준비에 시간을 보내느라 밖에서 데이트하는 비용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나마 자신은 집을 샀으니 다행이지 그 나이 대에 집이 없으면 지금은 결혼할 수 없다며 반쯤은 결혼에 대한 기대로 차 있고 다른 반쯤은 피곤함이 묻어 있는 눈으로 웃었다.

더운 여름날 한 카페 거리의 조각
이런 치열한 경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액세서리를 직접 가져와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한국인 H 역시 요즘 힘들다고 했다. 예전에는 디자인과 품질에서 우수한 한국상품이 잘 나갔었다. 지금은 그 시장 역시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 상인들이 서울 남대문에 와서 한국 물건들을 사가는데, H 10, 20개 사는 반면 그들은 100, 200개 이상 사서 중국 전역에 판다고 했다. 구입량이 다르니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부 중국상인들의 경우 시장에서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정말 말 그대로 마진 하나 없이 팔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이제 이 시장에 막 뛰어드는 사람들은 쉽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의 가게는 그나마 한 동안 잘 나갔던 징안쓰 지하상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30-100위안 정도의 물건이 잘 나갔다면 지금은 130-200원 이상의 물건들이 잘 나간다고 한다. 저렴한 중국산 상품에 대해 우위를 보이는 것은 차라리 고가품이라고 한다.

동서남북, 어디로? (한 화랑의 입구)
 하루 이틀 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경쟁의 배경에는 중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큰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일찌감치 경쟁에 뛰어들어 경제적으로 충분한 자원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상하이는 너무 살기 좋은 곳이다. 난징시루, 화이하이루, 그리고 곳곳에 위치한 백화점들에 있는 세계 각국의 명품상점들은 그들의 소비생활을 편리하게 해준다. 상하이에서의 일정이 며칠 동안 겹친 선배와 만나 이야기한 것처럼, 상하이는 서울이 따라갈 수 없는 글로벌 시티의 외양을 갖추고 있다. 각종 브랜드들의 플래그쉽 스토어들이 곳곳에 있고 서울에서 전문 상점을 보기 어려운 브랜드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IWC, 오메가, 롤렉스 등 시계 매장들은 거리마다 하나둘 씩 있다. 이번에 본 가장 흥미로운 상점은 Leica 카메라 매장이었다. 화이하이루 한 백화점 앞에서는 뷰익 설명회를 하고 있었고 다른 백화점 앞에서는 페라리 설명회가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포르셰 매장도 있다)

백화점 앞 페라리 설명회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
 도시의 월급 수준은 아직 서울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가는 서울을 능가하기 시작했으니 이 도시에서 조금은 버젓하게 살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경쟁과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시 중심에서 조금 많이 떨어진 지역이라도 방 두 개 거실 하나 있는 작은 집을 사려면  2억원 이상을 주어야 하고, 전세라는 개념이 없는 중국에서 조금은 번듯한 집에서 월세로 살기 위해서는 한 달 200만 원 정도를 내야 하는 상황. 상하이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20대 후반의 여성들은 최근 서울에 다녀왔는데 서울의 물가가 상하이보다 싸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의 드라마와 대중음악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고 매년 짧은 기간이지만 서울에 왔다 간다.)



한 백화점 앞의 시계
2011 7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6.5% 상승했다. 돼지고기는 1년 동안 56.7%가 올라 식품류 가격상승률은 14.8%에 달한다. 물가부터 복지, 안전 등의 문제를 포함하여 생활을 하기 위해 신경써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사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상하이 사람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의 정도는 상상 이상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놀라운 경제성장을 하고 있고 조만간 세계가 두려워할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중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다. 당분간은 하드 모드에서 계속 게임을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임이 어렵다고 이미 거쳐온 이지(easy) 모드를 다시 돌릴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 이지모드를 거치긴 한 걸까?)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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