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공포는 (귀신이든 좀비든 괴한이든 어떤 물체이든) 특정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 무엇인가의 뒤에 숨어 있는 가정 혹은 가능성이다. 영화 <타이타닉>의 공포는 떠돌아다니는 빙산이 아니라 빙산의 뒤에 있었던, '부딪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의 공포는 제이슨이나 프레디가 아니라 그들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주칠 수도 있고 마주칠 경우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혹은 가능성'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 싱크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정, 환풍구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가정,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 우리에게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공포는 그런 가정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 닥쳐오는 바로 그 일이다.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무엇, 그럴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상태. 이것은 더 큰 공포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포는, 예측 불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예측이 어긋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는 신뢰가 깨지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동시에 신뢰가 무너져내리는 출발이기도 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를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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