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업 시간의 일이다. 80명이 넘는 교양수업인데 학기말이 거의 다가왔지만 한 가지를 이야기해야겠다고 운을 띄웠다. 일종의 '꼰대의 잔소리'라 생각하라고도 했다. 전 주 수업 때 출석만 부르고 빠져나간 학생들이 몇 명 있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심산이었다. 가끔 한두 명 정도가 그런 적이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었는데 전 주 수업 때는 서너 명 정도가 그랬길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작정하게 되었다.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들에게만 따로 이야기할까 하다가, 전체를 대상으로 짧게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대학생 때 아니면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냐 싶기도 하고 나 역시 대학 생활 때 그러지 않았던 것이 아니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야기는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016년 11월을 지나고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석만 부르고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다. 한두 명 정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지난 시간에는 몇 명이 더 있었다. 대학 때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니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출석만 부르고 나가는 것은 이름과 몸을 분리시키는 일이다. 이름은 남겨놓고 몸만 빠져나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정체성은 이름과 몸이 결합되어 있을 때 만들어진다. 감옥에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일을 포함하여 이름을 몸으로부터 강제로 분리해내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름과 몸이 결합되지 않은 상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는 것은 이름과 몸의 결합을 분리시켰기 때문에 나온 결과들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었지만 그가 읽은 연설문은 그의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2014년 4월 16일 대통령이라는 이름은 청와대 안에 있었지만 그의 몸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만 하지 정작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해야 할 일을 왜 하지 않았는지만 궁금할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겪는 일은 이름과 몸이 분리된 것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름과 몸이 분리되어 이름만 내걸었거나, 이름은 숨기고 몸만 무슨 일을 한다면 그것은 떳떳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떳떳했으면 좋겠다. 아파서 못 온 것은 아파서 못 왔다고, 수업 시간에 다른 일이 있어서 그것에 가야 한다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떳떳한 것이다. 수업 한두 번 빠진다고 치명적인 결과가 생기는 것 아니니 어떤 다른 일 때문에 수업에 못 온다면 떳떳하게 이름과 몸이 함께 가서 그 일을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야 그 일도 더 즐겁지 않겠냐고 했다.
2016년 11월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6년 12월 2일 오늘 페이스북에 핫 플레이스가 등장했다. 링크한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철학과 소신"에 따라 표결할 것이니 탄핵 반대 의원 명단은 삭제하라고 다른 의원에게 '충고'하고 있다.
철학과 소신이 있고 그것에 떳떳하다면 이름을 밝혀라. 이름과 몸을 분리시키지 말고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나서라. 몸은 국민과 나라 생각하는 것처럼 하면서 익명 뒤에 숨으려는 것, 보기 안쓰럽고 떳떳해보이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이름을 걸고 몸을 움직여 매주 토요일마다, 혹은 매일 저녁마다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 떳떳함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2016년 11월을 넘어 12월이 되었다. 떳떳하게 가자. 떳떳하게 새해를 맞이하자. 몸으로부터 이름을 숨기는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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