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9일 금요일

산타, 크리스마스, 지구멸망에 대해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길래 공유했을 뿐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를 기본적인 수학과 물리학으로 설명한 동영상이다.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재미있었다.

이 이론에 대해 집의 위치가 실제로는 균일하지 않다거나, 굴뚝이 없는 아파트는 묶음배송을 할 것인가, 경비실에 맡길 것인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변수들을 통제한 모델을 만들어야 이론화가 가능할테니 사소한 문제들은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오류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아이들의 수가 과도하게 계상되었다는 것일테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기 때문"에 우는 아이들은 제외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물론 '우는 행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눈물이 최소 0.5ml이상 흘러야 한다거나, 눈물이 나지 않더라도 60db 이상의 성대 긁는 소리가 5초 이상 있을 경우는 우는 것으로 간주한다거나, 눈물과 소리가 최소 2분 이상 지속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기준이 필요하다. 원래 가사에 '산타할아버지는 리스트를 만들어 두 번 이상 체크하신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봐서 리스트에 체크를 할 정도의 기간, 즉 '전년도 12월 26일부터 당해년도 12월 23일까지'와 같은 기준은 이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는 아이를 선별하는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산타만의 재량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산타 1인에게 이렇게 막대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한가, 산타가 만약 자기 마음대로 기준을 바꿨을 때 그에 대한 제재가 가능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있다면 결국 우는 아이 선별 기준에 대한 사회적 제도화가 필요한 것이다.

12월 24일 산타에 의한 소닉붐, 그리고 그로 인한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어떤 분들은 산타의 수를 늘리면 어떤가, 라고 제안해 주셨다. 그렇다면 그 적정수는 어느 정도일까? 지역별로 할당하여 배치할 것인가, 31시간을 시간으로 나누어 3교대 혹은 4교대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제일 쉬운 방법은 3억 명 아이들이 약 8570만 가구에 산다고 하니 그 정도 수의 산타 혹은 대행을 통해 선물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현재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각 집의 부모들이 산타의 하청을 받아 선물을 전달하는 방식.)

이 외에도 순록의 과도한 노동강도를 지적해 준 분도 있다.

위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소닉붐으로 지구가 멸망하게 되었을 때 좀 더 중요한 문제는, 산타의 존재를 모르는/산타의 존재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 사는 17억 명 정도의 아이들이다. 이들이 인지하는 세상 속에는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산타로 인해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면 산타의 존재를 모르는 아이들은 지구가 멸망하는 것에 대해 전혀 대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믿지도 않고 존재조차 모르는 존재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지구가 멸망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도 자신들이 모르는 이유로 고통받는 많은 어린이가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벌어지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회의 사람들은 왜 자신의 마을이 전쟁에 휩싸여 있는지 명확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공포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근의 한 사진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12월 24일 지구 멸망을 미리 대비시키기 위해서는 산타의 존재를 믿는 다른 사회의 믿음체계를 먼저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나서야 산타에 의한 소닉붐이라는 과학적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간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과연 나쁜 일인가와 같은 철학적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재미있자고 한 이야기를 다큐로 받는 것이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쓰다보니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은 상상력의 산물 혹은 상징적 서사에 과학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뼈속까지 고착된 노동, 가치, 독점시장, 권력, 제도화 등의 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막고 동심을 파괴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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