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9일 일요일

좀비와 귀신과 인간, 그들의 시간

얼마 전에 "좀비는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과거가 삭제된 존재'"라고 쓴 적이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비로 변화한 존재와의 조우는 그의 과거를 생각해 볼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좀비와 달리 그들의 과거 때문에 두려운 존재들이 있다. 귀신 혹은 유령이 그들이다. 좀비와, 귀신 혹은 유령의 대비는 어느 정도 명확하다. 좀비가 텅빈 육체의 존재들이라면 귀신 혹은 유령은 육체를 결여한 상태에 가깝다(육체를 결여하고 있으나 인간에게 시각적으로 보이기 위해 육체를 '임시로' 갖는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좀비는 과거가 삭제된 존재라면 귀신/유령은 과거를 떠나지 못해 현재에 남은 존재들이다. 

귀신이든 유령이든, 혹은 그들이 깃든 집이든 과거의 사건이 중요하다. 그 과거는 오노 후유미가 [잔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몇 년 전 혹은 며칠 전의 '사건'일 수도 있다. 

귀신에게는 과거의 사건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과거가 현재까지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좀비를 과거가 삭제된 존재라 한다면 귀신은 현재가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비와 귀신에 대한 '대응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좀비에게는 현재적 처치(대개는 머리통을 박살내는 방식이겠지만)가 적합한 반면 귀신에게는 과거에 대한 해결만이 거의 유일한 치유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론적으로 귀신의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힘으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이 더 안타까운 존재로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다. 최소한 나에게는.

현재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 비단 귀신이나 유령에게만 필요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과거에 묶여 있는 귀신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더 간절히 필요하기에 인간은 공포문학과 영화를 통해 이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귀신과 유령은 그래서, 인간에 대한 강력한 은유이다.

(추기: 귀신들린 좀비가 있다면 정말 막강하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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