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7일 목요일

낯선 도시에서 걷기

도시는 많은 사람들, 많은 일들, 오래된 시간 등이 써 내려간 텍스트이다. 도시가 텍스트라는 점에서 도시는 읽기의 대상이 된다. 도시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의 경우 도시를 읽는 한 가지 방법은 그 도시에서 많이 걷는 것이다. 처음 가보는 도시의 경우 가능한 한 많이 걷는다. 아주 오래 전 중국 난징(南京)에 갔을 때 첫날 버스를 잘못 내려 무거운 짐을 맨 채 3시간 이상을 걸었던 적이 있다. 분명 실수였고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 덕에 난징의 지리는 어느 정도 익혔다. 다음날부터 시내를 다닐 때 머리 속에 지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타이베이 시립도서관 가는 길
내가 걷기를 선호하는 것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걷기에 익숙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는 방법을 먼저 알아보고 움직이게 되는데 그 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애매한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나 그냥 걸어가나 시간이 10분 정도 차이 밖에 안 날 것 같으면 그냥 걷는다. 타이베이에서 수훠기념종이박물관(樹火紀念紙博物館)을 갈 때 그랬다. 숙소에서 그곳까지 지도를 보니 10분 정도 걸어가서 지하철 한 정거장을 가서 또 10분 이상 걸어야 하거나, 지하철 한 정거장 가서 환승한 후 다시 한 정거장 가서 또 다시 10분 이상 걷는 길이었다. 에이, 이렇게 귀찮게 갈아타고 계단 오르락내리락 하느니 차라리 걷자. 이런 결심을 하게 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이유는 차를 갖고 있지 않으니 직선거리로 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걷기이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이 곳의 상황들과 도시의 일련의 흐름들에 대해 감을 잡는 시간이다. 멀리 가기는 어렵지만 주변을 걷다가 먹을 것도 사서 먹고 카페에도 들어가 차를 한 잔 하면서 퍽퍽한 다리를 쉬어가다보면 어설프기는 해도 그곳 사람들의 삶의 자락에 슬그머니 포함되는 기분을 간혹 느끼게 된다. 그것이 그저 기분일 뿐일지라도.

물론 한 번에 다 읽어낼 수는 없겠지만 걷기는 최소한 그 도시의 결을 느끼는 시도로서는 중요한 성과를 가져다 준다. (단체 관광 혹은 패키지 여행의 경우 걸을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관광상품의 목적은 경관을 구경하는 데에 있지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는 데에 있지 않다. 특정 포인트를 향한 이동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는가,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경관 포인트'와 쇼핑센터를 들렀는가만이 단체 관광 상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걷기의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의 삶에 포함되는 기분’이란 느끼지 못한다. 그곳 사람들 역시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동차나 버스, 오토바이 등의 탈것이 가기 위한 것이라면 걷기는 서기 위한 것이다. 서기 위한 걷기란 '무엇인가와의 만나기'의 다른 표현이다. 여행안내서에서 소개한 곳을 가기 위한 목적지향의 움직임이 아니라, 의도치 않았던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하게 되기도 하며 어떨 때는 그저 머리를 식히기 위한 목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바오짱옌 국제예술촌 입구

웨이룬 국수집
(위 사진은 최근 관심이 생긴 주제 때문에 국제예술촌이라 불리는 바오창옌(寶藏巖)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국수집이다. 들어갈 때는 그저 배가 고파서 들어갔을 뿐인데 상당히 맛있었다. 직접 손으로 뽑은 면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나와서 간판을 보니, 역사가 꽤 된 집이었다.)

이런 경우처럼 그저 걷다가 배가 고파 들어간 음식점이 예상외로 맛있고 여행안내서에 소개되어 있지 않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아주 호평을 받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 왔을 때 맥도날드나 KFC는 피하려고 한다. 그런 곳은 한국에서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걷다가 배는 너무 고픈데 적당한 식당을 만나지 못한다면 맥도날드가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현지화된 맥도날드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이때뿐이니 말이다.




타이베이의 유명한 음식 중 하나는 소고기 탕면(牛肉麵)이다. 이곳은 타이베이 안내서에 나와 있는 곳이어서 꼭 가리라 마음먹고 간 곳이다. 정말 맛있다. 국물을 한 숟가락 먹는 순간, 혼자 감탄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융캉제(永康街)의 융캉 소고기 탕면과는 비교가 안되는 맛이었다. 매년 있는 소고기 탕면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는데 나는 2007년에 상을 받은 두당이몐(獨當一麵)을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와 옆집에서 푸젠의 후추빵 파는 곳을 발견. 하나를 사먹고 소화를 시킬겸(한국에 돌아올 날이 며칠 안 남았던 터라 빨리 소화를 시키고 과일음료를 사먹을 작정이었다) 지하철 역의 반대방향으로 걷다가 서점 거리의 두 군데 작은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각각 한 권씩 찾아낸 것도 중요한 수확이었다.

땀흘리며 후추빵 만드는 청년들

물론 걷다가 비를 만날 수도 있다. 습도는 엄청나게 높고 온도는 35-36도 정도 되는 여름날의 타이베이에서는 흔하게 경험하는 일이다. 한 두 시간의 소나기가 더위를 잠시 식히니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덥고 습한 사우나 기후에 익숙해서인지 타이베이의 친구들은 베이징과 같은 '건조한 여름'이 오히려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피부가 너무 건조해진단다.) 비를 만나면, 근처 카페에서 쉬어갈 명분이 생긴다. 에어콘으로 시원하게 '히야시'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본 것들을 기록할 시간도 벌게 된다.



여름의 타이베이는, 솔직히 걷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아침에 나갈 때 '현재기온 35도'라는 안내를 보는 순간, 출발하기 전 호텔 로비에 서있어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그곳의 기온은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을 갖는다. 하지만, 2-3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가는 동안 그늘을 찾아 걷고 문이 열린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막강한 에어컨 냉기에 잠시 잠깐 기뻐하면서 가다보면 지하철로 빠르게 이동했을 때 당연히 보지 못했을 여러 가지를 보게 되고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특정 목적에 종속된 이동이 아닌, 무엇인가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설 수 있는 걷기란 도시를 읽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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