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3일 수요일

비밀기지 만들기

대학교 때였던 것 같다.
반지하에 있는 방 하나가 나의 방이 되었다. 집 현관 아래에 따로 있던, 창고로 쓰이던 공간이었는데 정리하고 도배하니 방이 되었다. 반지하여서 습기가 많고 침대는 항상 축축했지만 나 혼자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다. 화장실을 가려해도 불편하고 휴대폰이 없던 당시에 전화를 받기 위해서 올라가야 하는 상황도 불편했으며 어떤 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마당의 빗물이 넘쳐 들어와 물바다가 되기도 했지만 나만의 방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지트라 불리는 나/우리만의 공간은 무엇인가 비밀스럽지만 자유롭고, 공모와 계략에 연결되면서도 결국은 주된 생활공간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는 신비스러운 곳이다.

인류학을 복수전공하고 현재 다른 학교 대학원에 다니는 졸업생이 와서 추천한 책 [비밀기지 만들기](오가타 다카히로, 2014, 파주: 프로파간다)는 어릴 때 누구나 가졌던 비밀 아지트에 대한 로망을 보여준다. 도시와 자연의 틈새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창출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알려주고 실제의 사례들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예전에 [연필깎기의 정석]을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심지어 한국어 번역본을 낸 출판사도 같다!!)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구나. 어찌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구나. 별 것 아니라 생각하던 것이 사실은 꽤 많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었고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어 우리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던 것 뿐이었구나. 뭐 이런 느낌.

어릴 때 책상 아래 들어가 보자기나 이불을 의자까지 덮어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던 기억, 종이상자를 마루에 놓고 그것을 자신의 집이라 우기던 기억이 이 책을 통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어리던 시절에 아지트는 '무엇을 하기 위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아지트를 만드는 행위, 나/우리만의 공간을 만드는 행위 자체를 위해 남들이 나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라 믿었던) 비밀기지를 만들며 재미있어 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지금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 숨어버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우리는 나만의 장소에 대한 갈망과 욕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존재이다. 지금의 스마트폰은 기계 암호와 카톡 암호 등을 통해 철저하게 나만의 장소, 개별화된 장소가 된다.

그런데 아지트나 비밀기지는 '너에게만 알려줄께'라고 그 장소를 조심스럽게 알려줄 친구가 있던 시절의 일이라는 것이 다르다. 이 책이 보여주는 틈새에 대한 기억과 열망은 어쩌면 나의 비밀을 조심스럽게 공유하고 무엇인가를 유쾌하게 공모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열망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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