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올해는 두 차례 상하이에 다녀왔습니다. 한여름에는 조사차, 9월에는 보충조사도 하고 상하이 엑스포도 관람할 목적이었습니다. (사실 엑스포를 보기로 한 것은 오래 전 결정된 일이었습니다. 엑스포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로 올리려 합니다.) 조사의 목적도 있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저와 마눌님이 스스로에게 주는 휴가이기도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쌓인 일들 때문에 돌아와서는 잠시 (사실은 지금까지) 허덕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재미도 있었구요.
1842년 아편전쟁의 종결, 그리고 그 결과로 체결된 남경조약에 의해 개항된 상하이는 중국의 다른 도시보다 더 빠르게 '근대화'된 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유럽의 어떤 지역들보다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강한 힘을 자랑하던 중국에 서구열강의 조계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치욕스러운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의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고 이후 있을 경제적 성장의 첫 걸음을 내딛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오늘날 상하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단한 자신감의 출발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상하이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
새로운 쇼핑의 공간 正大广场 |
@COSTA Coffee |
크기도 크기지만 화려함 역시 중요한 특징입니다. 와이탄이나 푸동의 야경도 그렇고 황푸강의 서쪽에서 푸동까지 연결된 지하터널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상하이가 이런 'modernity'(라고 포장된 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실제로는 처음 본 변검 공연입니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곳.
마오쩌둥이 상하이에서 머물던 곳 |
밀랍으로 만든 젊은 마오쩌둥의 모습 |
중국의 어디나 그렇지만 공산당의 첫 대표자대회가 열렸던 곳인만큼 상하이에도 시내 곳곳에 혁명과 공산당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객들,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간혹 찾아옵니다. 일부 서구학자들은 혁명과 전통, 과거로 포장된 중국이라는 이미지의 소비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만 중국인들에게는 어쨌거나 놓아버릴 수 없는 경험과 기억으로 존재하는 시간이겠지요.
저에게 중국을 한 마디로 설명하라고 하면 제가 선택하는 단어는 '다양성'입니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모습, 다양한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의미가 어떨 때는 충돌하고 어떨 때는 공모하는 공간. 그곳에 다녀온 기록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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