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낙서처럼 적은 것을 이곳에 옮겨 온 것입니다)
문서작업을 하고 파일명을 결정하는 순간은 논리적이면서도 예술적이어야 하고 '현재 내가 만든 이 문서의 특징과 속성에 부여한 나의 명명법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거야'라 믿는 마법의 순간이다. 글과 책을 다시 읽을 때 누구나 항상 경험하듯이, 예전에 봤을 때와는 다른 점이 눈에 띄고 그 책의 색다른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파일이라는 것도 그렇다. 파일의 이름만 가지고서는 내용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을 때가 있어서 일일이 파일을 열어봐야 그 특성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왜 파일이름을 이렇게 붙였을까 의아해한다. 내용과 파일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서도 나중에 또 헷갈릴 수 있으니 이름바꾸기를 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믿게 되는 경우도 많고 나는 실제로도 그렇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만의 체계가 만들어지기는 한다. 그것은 자신의 컴퓨터 세상에 구현한 분류체계이고 범주화의 논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체계화와 범주화의 '법칙' 덕에 파일의 내용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뒷전에 밀리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파일을 첨부한 메일을 보낼 때 혹은 누군가의 파일을 받을 때 내가 만든 분류체계와 법칙이 다른 사람의 그것과 충돌하는 경우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보낸 파일을 나의 컴퓨터에 저장하는 순간은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분류체계'를 '나의 방식'으로 변형하여 나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일련의 자문화중심주의적 행위이다. 두 세계관의 부딪힘은 거대한 문명의 충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파일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떠올랐던 단어가 그 파일을 '영원히'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 의심은 파일 이름을 만들 때보다 필요한 파일을 찾으려 할 때 더욱 강해진다)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일테지만 그 의심은 내가 의식하기 전에 이미 사라진다. 그 의심에 휘말리기보다는 그냥 지금 이순간에 떠오르는 단어로 휘리릭 파일 이름을 붙이고 엔터키를 눌러 저장해버린 후, 언젠가 비슷한 생각을 또 다시 하겠지. "아~ 내가 분명히 저장했는데 찾을 수가 없네"라며.
파일의 이름붙이기처럼 한순간의 인상만으로 현재를 평가하려는 시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을까. 김춘수의 시처럼 무엇인가에 대한 명명이 그것에 대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행위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존재감의 부여가 영원히 신뢰할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활에서 어쩌면 더 쉽게 경험하거나 발견하게 되는 것이겠지. 그 존재감의 부여가 찰라적이고 순간적인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사람에게 부여했던 존재감이 시간이 지나 달라졌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파일 이름이 내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이 될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을까.......
(밀린 일들을 하면서 파일 저장하다가 다른 길로 이렇게 빠졌는데 이건 그냥 그 일을 하기 싫어서 그런 것일뿐...... 아무렇게나 파일 저장하고 원래 하던 일 하기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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