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일 일요일

스모그에 덮인 베이징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이나 출장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움직일 때가 있다. 익숙한 지역을 갈 때에도 조금은 설레고 떨리지만 익숙하지 않은 지역을 갈 때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은 누구나 갖는 동일한 경험일 것이다. 익숙한 곳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든 비행기로 갈 때 내가 가장 설레고 떨리는 순간은 착륙을 위해 안전벨트 사인이 켜지고 “모든 의자 등받이와 좌석 테이블을 원래의 위치로 해주시고 창문 가리개는 모두 열어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며 서서히 하강을 시작할 때이다. ‘이제 곧 새로운 지역과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겠구나’라는, 약간은 낭만적인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짐을 무사히 찾고 현지의 교통수단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적당한 시간에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는 등의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것도 이 순간이다.

지금까지 다녀본 곳이 몇 곳 되지는 않지만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고 활주로를 향해 다가갈 때 비행기 창밖으로 봤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은 중국 후베이 이창에 갈 때였다. 내가 가기 전날까지 큰 비가 며칠 동안 내렸고 실제로는 그 예보 때문에 약간의 긴장을 하고 있었다. (우려와 달리 이창에 갈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창에서 상하이로 돌아올 때 거의 6시간 이상 이창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었다.) 내가 도착할 그 즈음 비가 그치고 하늘의 구름이 확연하게 걷히면서 손오공이나 신령님이 탈만한 크기의 작은 구름들이 촉촉한 산과 들 위에 낮게 얹혀 있었다. 비가 개인 날의 촉촉하면서도 쾌청한 기분은 비행기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2009년 이창 강변. 비가 그친 뒤의 석양. (원본파일을 못찾아 예전에 미니홈피에 올렸던 사진을....)

이와 정반대의 기분을 느낀 것은 2014년 2월 베이징에 갈 때였다. 보통 비행기는 구름보다 높이 떠서 운항을 하다가 착륙하는 시점이면 구름을 뚫고 내려와 어느 정도 지나면 땅위의 건물과 강과 도로가 조금씩 보이고 그것이 점점 커져 실물크기가 될 만하면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는 덜컹거림과 함께 착륙의 안도감을 갖게 된다. 타이베이 시내 숭산 공항에 내릴 때에는 타이베이의 유일한 높은 건물인 101빌딩을 한참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의 베이징은 무척 다른 경험이었다. 분명 착륙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을 들었고 눈이 부셔 내려놓았던 창문가리개를 올리고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다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을 내려와도 비행기는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공항 근처 가로수 바로 위에 있는 정도의 높이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나무와 건물과 풀들과 땅이 보였다. 하늘 높이 떠있는 구름이 아니라 공연 때 무대에 깔리는 드라이아이스가 아주 아주 두껍게 땅을 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뉴스에서만 듣던 스모그가 이 정도라니. 5년만에 다시 온 베이징에 대한 설레임 따위는 전혀 없이 ‘이런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며칠이기는 하지만 과연 괜찮을까?’ 따위의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짐을 찾아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본 것은 스모그뿐이었다. 1952년 4000명 정도가 사망하고 10만 명이 폐질환을 갖게 되었다는 런던의 스모그 관련 자료들을 한 순간에 완전히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한 낮의 태양은 스모그로 뿌옇게 가려져 있어 맨눈으로 직접 봐도 눈이 전혀 아프지 않았고 독특한 모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건물은 지은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옛 베이징의 사합원건물에 사용하던 회색 벽돌과 같은 색을 띄고 있었다.
  
한 낮의 태양이 이렇게 보입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CCTV 건물
베이징에 자주 와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스모그 때문에 도시 전체가 활기를 잃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마스크에 가려져 있어 읽기 어렵고 하루 종일 희뿌옇던 도시는 저녁이 제 시간보다 더 일찍 찾아오는 것 같았다.

매일 매일의 뉴스와 기상예보는 스모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은 스모그에 대한 대처, 회피, 조롱과, 긴 시간 동안의 대면으로 인한 무관심으로 채워진다. 마라톤 동호인들은 방독면을 쓰고 훈련을 하고 허베이의 한 주민은 스모그 발생과 대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정부를 고소하였다고 한다. 베이징 대학 곳곳에 세워져 있는 동상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이와 관련된 사진은 여기를 클릭해서 보세요).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동상들도 스모그는 참기 어려웠나보다.

베이징 왕푸징 백화점 앞. 설립자 동상에 마스크를 씌워 놓았다. 

스모그가 이처럼 지독하게 오래 가고 이리도 멀리 가는 데에는 베이징의 급속한 확장(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베이징이 이제는 거의 허베이까지 확장되었다고 한다. 지하철 노선들이 남과 북으로 끝도 없이 연장되는 것이 그 증거이다.), 개발과 성장 우선 정책이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이와 함께 건조한 날씨도 한 몫 한다. 기본적으로 건조한 곳인데 최근에는 그 건조함이 극에 달한 모양이다. 작년 가을부터 비는 거의 안 왔고 이번 겨울에 눈도 단 한 차례 내린 것이 고작이라고 한다. 비가 안 오니 올해 농사도 걱정이지만 대기 중의 부유물질들이 가라앉지를 않는 것이다. 물론 공기 오염이 원인이어서 더 건조해진 것인지, 건조해서 공기오염이 더해진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스모그는 현단계의 대기오염으로만 한정될 문제는 아니다. 스모그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에 안 좋다는 보고가 이미 중국에서도 뉴스를 통해 소개되고 있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마스크들에 대한 성능 비교가 뉴스에 간혹 보도된다. 학생들은 체육시간에 밖에서 운동을 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밖에서 뛰어놀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오기를 꺼려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체육시간에 밖에서 운동하던 학생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아침마다 공원이나 동네의 적당한 넓은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태극권 모임, 사교댄스 모임 등이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앞으로 암발병률도 높아질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들도 나온다. 밖에 나가 뛰어놀지 못했던 아이들이 자랐을 때 필요한 사회적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 스모그가 걱정스러운 또 다른 이유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숨막혔던 것은 따로 있다. 실제로 베이징 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마스크를 쓰는 경우라면 방진마스크, 세련된 패션 마스크 등이 눈에 띄지만 실제로는 마스크의 답답함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스모그가 심하지 않을 때면 하루걸러 하루 정도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베이징에 있던 일주일은 스모그 황색경보와 주황색경보가 반복되었던 시간이었다. 하필이면.
어쨌거나 사람들은 외부의 시각과 판단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담담했다. 이미 몇 년 동안 지속된 일이어서 무심해졌을 수도 있다.

스모그보다 더 불편하고 답답했던 것은 여전히 안정적이라고 느끼기 어려운 일상생활의 시스템과 국가의 시선이었다. 내가 중국에서 불편해하는 것 중 하나는 길을 건너는 일이다.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가 들어와도 안심하고 건너기 어렵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좌우를 여러 차례 확인하며 건너야 하는 건 차든, 자전거든, 전기자전거든 무엇이 어느 방향에서 횡단보도를 향해 들어올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문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사람을 아주 가끔 보기도 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민공들의 큰 짐과 가방은 지하철의 통로를 꽉 메우고 있다.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민공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기억하기로 하자.) 지하철과 버스, 카페에서 이어폰 없이 게임을 하거나 영화/드라마를 보는 경우도 있다. 식당을 채우는 담배연기는 무척 참기 어렵다. 정말 많이 개선된 것이기는 하지만 도심에서도 일부 화장실은 무척 불편하고 더럽다. 제한속도 80킬로미터인 도로에서 120킬로미터로 달리며 지키라는 속도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단속 카메라도 몇 곳 없나보다. 운전을 안 해 잘은 모르겠지만 겁이 많은 나는 뒷자리에서도 안전벨트를 꼭 맬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역시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니 중국사람들만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제대로 지내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일들은 또 있다. 국가대극원에 갔을 때 내부를 구경하기 위한 입장권을 사려 할 때 세 명의 암표상이 다가왔다. 표를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매표원들과 곳곳의 경비들은 그들을 분명 보고 있었는데 어떠한 제지나 만류도 없었다. 매표소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면 모를까, 매표소 바로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팔다니. 매표소에서 30위안에 파는 입장권을 그들은 10위안에 팔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더 싸게 해주겠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싸게 해주는 것일까? 베이징의 한 테마파크에서 열리는 공연을 볼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액면가는 280위안이 찍혀있는 표를 65위안에 살 수 있었다. 가짜표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발매된 표인데도 말이다.

나야 짧은 시간 동안 있었으니 잘 모르겠지만 장기간 생활한다면 이런 것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적응한다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덜 손해를 보며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안전을 위한 것이라 이름 붙은 검사와 검문은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가방과 손에 든 모든 것은 X-Ray 투시기를 통과시켜야 한다. 직원들 모두가 위험한 물건이나 폭발물을 열심히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잡담을 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공항에 들어올 때 체온 측정기 앞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직원은 모두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었다. 검문/검사는 천안문에 가까이 갈수록 더 자주 있고 상대적으로 더 철저해진다. 만약 검문 정도의 그래프를 그린다면 베이징의 중심에 가까이 갈수록 기울기가 더 커지는 그래프가 될 것이다. 천안문 광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안전검사(라는 이름의 검문)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곳곳에는 사복을 입었으나 누가 봐도 경찰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사람들과 제복을 갖춰 입은 무장경찰들이 서 있다.

스모그 때문에 뿌연 천안문 광장
한국도 간혹 검문 검색이 있고 중국보다 훨씬 심한 정도의 검문과 감시가 일상화되어 있는 곳도 분명 있으니 중국의 사례만을 지나치게 타자화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지금처럼 ‘테러’와 타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증대한 위험 사회에서 검문과 검색을 완전히 포기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국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무엇인가 큰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경험하는 검문과 검색은, 과장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국가 자신의 손 안에 놓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심지어 상하이 박물관에 들어갈 때에 생수병은 열어서 물을 마셔보라고 한다. 휘발유나 인화성 물질 반입을 막기 위해서란다. 광장이라는 곳은 사람이 모여 생활이 되는 곳이다. 구경꾼도 모이고 장사꾼도 모이고 관광객도 모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모이고, 소매치기도 들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검문과 검색이 있음으로 해서 천안문 광장은 특정 사람만 모일 수 있는 곳이 된다. 모이기는 하지만 모여서는 안 되는 곳. 1989년의 민주화 요구와, 90년대부터 몇 차례 있었던 법륜공 모임에 크게 데어서일까. 천안문 광장에서의 검문은 인민의 안전이 아니라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변화는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 근본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사이트들에 접속하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일부 중국 친구들은 VPN을 사용하거나 다른 우회경로를 이용한다. 한국의 통신사를 로밍해 간 전화기에 내가 테더링으로 접속했을 때 나 역시 페이스북에 접속이 가능했었다. 실험삼아 글을 올리려 했을 때 ‘게시’ 버튼이 활성화되지 않아 실패하기는 했지만. 기술적으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일부 호텔에서는 투숙객들을 위해 중국 정부가 금지한 사이트의 접속을 가능하게 한다고도 하니 1984의 빅브러더처럼 모든 것을 보고자 하는 국가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감추거나 잠시 숨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일주일 동안 베이징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강하게 느끼는 숨막힘’이라는 것이 짧은 기간 동안의 경험일 뿐이어서 확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스모그를 이겨내기 위해 들이는 많은 노력들의 일부가 이곳 시스템의 사소한 변화들을 만들기 위해 투입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사람들이, 혹은 어떤 사람들이 “너나 잘 해”라고 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

(추가: 2014년 3월 1일 쿤밍의 기차역에서 '괴한'들의 칼부림으로 29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다는 뉴스가 나왔다. (관련 뉴스는 이곳에서 보세요.)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신장 위구르족의 '테러'라는 발표가 나왔고 양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내가 잠깐 경험했던 것보다 더욱 '팍팍한' 검문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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