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3일 일요일

인류학자로서의 씨스타


벌써 1년이 넘었다. 2013년 1월 중국에서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해 허탈한 상태에서 돌아왔을 때 씨스타의 노래를 들었다.

"있다 없으니까 숨을 쉴 수 없어~"

이 노래의 맥락, 이 노래가 하고 싶던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이 "있다 없으니까"라는 부분을 들을 때마다, 그 며칠 전까지 내게 있었던 전화기가 생각났고, 약간 과장하면, 마음이 아렸다. (그 때 남긴 글은 여기에 있다)

며칠 전에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내용은 약간 수정하였다):

어제 모처럼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일찍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나름 오랜만의 일인 듯.
요즘 (여러 일) 때문에 거의 매일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갔는데 어제는 마눌님께서 나에게 '소유와 정기고의 <썸>이 딱 자기 노래'라고 말했다.
 "요즘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이 페북 글에 달린 댓글 중에는 "남편에게 불러줘야 하는 노래"라는 한 선배의 푸념도 있었다. 내가 마눌님께 들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일게다. 다른 친구는 씨스타의 <나 혼자>를 인용하기도 했다(잠시 찾아보니 씨스타의 <나 혼자>는 자취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물론 특정 순간과 특정 맥락에서 "이건 딱 나의 노래"라고 여겨지는 노래가 비단 씨스타의 경우에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별의 순간에 우연히 듣게 된 어떤 노래는 나중에 들어도 여전히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할 것이고 즐거운 순간에 우연히 듣게 된 어떤 노래가 그 상황에 딱 떨어지는 가사를 가졌다면 그 노래는 한 동안 '나의 노래'가 될 것이다.

내가 경험한 몇 상황에서는 우연히 씨스타의 노래들이 흘러나왔고 하필이면 그 상황에 딱 맞았던 것뿐이다.

누군가 나도 인식하지 못한 순간과 상황에 대해 아주 딱 맞는 이야기로 만들어준다면, 나에게 씨스타의 노래가 인상깊었던만큼의 깊은 인상을 갖게될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 혹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기, 메모,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다양한 글들, 블로그 포스팅,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는) 미니홈피..... 어떤 사람은 시나 소설을 통해, 우리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순간들의 축적과 중첩(우리는 이것을 삶이라고 부른다)을 인상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어쩌면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삶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축적하고 묘사(description), 재현(representation)하는 사람들 중에 인류학자라는 분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는 일상의 일부를 포착하여 서술하는 그들의 작업이 낳은 결과물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 인상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중국 농촌에 사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페이샤오퉁의 어떤 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도 있고 한국의 어떤 젊은이는 [우리는 디씨}에서 자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움찔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의 어떤 분은 우연히 에반스 프리차드를 통해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해낼지도 모르겠다. (인류학자의 역할이 단순히 재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이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일상을 그려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바쁘고 힘들고 숨찬데 그에 대해 반추하고 생각하면서 훨씬 많은 시간을 더 투자해 자신이, 혹은 다른 사람이 겪었던 가슴 깊이 파고드는 아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의 기쁨과 행복, 혹은 그저 잠잠히 흘러가는 일상의 모습을 재현하고 표현하는 일이 어떻게 간단한 일일 수 있겠는가. 뛰어난 작사가, 작가, 글쓰는 사람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쉽지 않은 길에 서 있는, 인류학에 발을 걸치고 사는 분들께도 박수를 보낸다.

글도 쓰고 생각도 하고 바쁘게 지내는 것도 필요하고, 글을 읽고 생각을 짜내느라 바빠 다른 일들 돌볼 짬도 잘 나지는 않겠지만, 잠깐씩은 음악도 듣고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지내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의 삶만큼이나 나와, 나의 가족들의 삶과 그 삶이 지나가고 있는 시간도 중요할테니. 

(이 글의 제목을 다는 데 도움을 주신 클리포드 기어츠께 감사드린다.)

















이 글은 내가  내 돈 주고 산 레노버 T61, 내 돈 주고 산 아이락스 BT-6460 블루투스 키보드, 역시  내 돈 주고 산 (지금은 단종되어버린) 갤럭시탭 7.7 및 2013년에 잃어버린 핸드폰을 대신하고 있는 S*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것이다. 중국 어딘가에 있을, 나의 옛 전화기 대금을 나는 아직 내고 있다. (제품 후원 받아 글쓰시는 분들 흉내 좀 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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